李 대통령 ‘전세 정상화’ 발언에 청년층 “그래도 전세일 수밖에 없어”
“전셋값 폭등이 아니라니요…. 전세가가 6개월 만에 1억 원씩 오르다보니 차라리 ‘영끌’해서 매수하겠다는 분이 많죠.”(서울 성북구 돈암동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사 조모 씨)
이재명 대통령의 전세 관련 발언에 대한 전세세입자와 부동산공인중개사의 반응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제도는 특이하게 한국에만 있는 사금융”이라며 “(지금까지) 전세대출을 많이 해준 게 집값 상승의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세를 통해 목돈을 모으고 있는 이들은 “어떤 취지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월세와 전세 중 전세를 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형적 구조 알아도 어쩔 수 없어”황모 씨(33)는 현재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59㎡(이하 전용면적)에 전세금 4억 원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 중 3억 원은 정부의 신혼부부 정책대출을 받은 것으로, 한 달에 약 50만 원 이자가 나간다. 오히려 이전 오피스텔에 거주할 때보다 저렴하게 월세를 내는 셈이다. 황 씨는 “신혼집을 구할 때 같은 아파트 평형 기준으로 월세는 150만 원도 허다해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요즘 전셋값이 상승한다고 하는데 10월 갱신 계약을 앞둔 상태라 최대치(5%)로 올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다. 그럼에도 행복주택에 당첨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전세로 버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세제도는 신혼부부와 청년층이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는 일종의 버팀목이다. 경기 성남시 정자동에 거주하는 신모 씨(31) 역시 사회초년생이 된 후 처음으로 전셋집을 구했다. “월세 살면 돈 버리는 것”이라는 회사 선임의 말을 듣고서다. 시작은 원룸 전셋집이었으나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뒤에는 이직과 함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신 씨는 “전세대출 이자가 월 90만 원 가까이 나가지만 월세는 100만 원 밑으로는 아예 찾을 수 없었다”며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전세금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어 전세가 사금융이라는 대통령 말에는 공감하지만, 청년이 적은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늘리는 정책을 함께 언급해야 전세의 월세화가 정상화라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 씨(34)는 “주변에서 ‘갭투자’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을 봐서 이를 줄이려는 정부 정책을 이해는 한다”면서도 “전세가 기형적 구조라고 생각하지만 청년 입장에서는 월세와 전세 중 무엇을 택할 것이냐고 물으면 전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세와 월세의 월 부담액 차이는 2배가 넘는다. 5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6억8000만 원으로, 이 가운데 60%를 전세대출로 조달해 연 4% 이자를 부담한다고 가정하면 월 136만 원을 이자로 내게 된다. 하지만 같은 금액 아파트를 전월세 전환율 5%를 적용해 월세를 낸다고 가정할 경우 월 지불액은 283만 원이 나온다. 물론 전세 보증금으로 지출하지 않은 자본금을 투자할 수 있지만 서울 4인 가구 기준 월 중위소득이 649만 원임을 감안할 때 300만 원 가까운 월 지출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전세와 관련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좀 더 과격한 내용의 글이 게시되기도 한다. 친여 성향의 한 커뮤니티에는 ‘전세 때문에 정말 정신병 걸리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글쓴이는 “실거래가보다 너무 오른 가격이라 가격 협상을 요청했는데 집주인이 그냥 다른 사람을 받겠다고 한다”며 “집값이야 100% 정부 탓이 아니라 하더라도 전월세 작살난 것은 너무 명백하지 않나”라고 썼다.
실제 찾은 현장에서는 전세 임대인이 갑으로 통하고 있었다. 청년과 신혼부부 수요가 많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50대 김모 씨는 “주변 2000채 아파트 가운데 현재 갖고 있는 전세 매물이 하나도 없다”며 “전세 매물이 나오면 연락 달라는 사람이 많아서 기존 계약금에 비해 호가가 1000만~2000만 원 뛰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A 씨 역시 “84㎡ 전세가 6개월 전만 해도 6억50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7억5000만 원에 매물이 나온다”며 “지금 전세로 들어가 있는 사람은 최대한 연장해서 살려고 해 계약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전했다. 전세가 집값을 올린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A 씨는 “과거에는 전세가 집값을 올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 맞지만 최근 매매가와 전세가 상승은 결국 이번 정부 들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0·15 부동산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2년 실거주 의무가 생기면서 전세 물건 감소가 가속화했다. 서울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7104건으로 2015년 11월(6946건) 이후 가장 적었다.
전세 공급 부족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전월보다 1.15% 올랐다. 2015년 4월(1.25%) 이후 11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갱신권을 사용해 전세 인상률이 5%로 한정되는 재계약 사례를 제외하면 신규 세입자가 느낄 부담은 더 크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전세 소멸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긴 하지만 지금 속도는 너무 빠르다”며 “10~20년에 걸쳐 점차 사라져야 전세를 필요로 하는 서민층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44호에 실렸습니다]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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