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7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 위반죄와 업무상 배임 등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누락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2심 과정에서 추가된 공소사실을 포함한 23개 혐의 전부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이 확정되면서 이 회장은 약 9년 동안 자신을 옭아맸던 사법 족쇄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게 됐다.
앞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까지 진행된 1심과 2심은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만을 목적으로 한 조치라고 단정할 수 없고 합병 추진 과정과 절차에 위법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변경도 고의적 분식회계로 볼 수 없고 회사 측의 재무제표 처리가 재량을 벗어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도 봤다.
당초 1심과 2심에서 모든 혐의와 이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전부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대법원에서 유죄로 뒤집힐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급심은 사건의 실제 사실관계와 증거 등을 중심으로 심리하는 사실심인 반면, 대법원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더 이상 다투진 않고 하급심이 판결한 내용을 전제로 법이 올바르게 적용됐는지에 중점을 두는 법률심이기 때문이다.
법조계 예상대로 대법원은 이날 이 같은 원심 판결을 받아들이고 검찰 측 상고를 기각했다. 특히 대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 2019년 5월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18테라바이트(TB) 규모 백업 서버와 장 전 차장의 휴대전화에서 추출된 문자메시지 등의 증거능력이 탐색·선별 절차와 실질적 참여권 보장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단을 그대로 인용했다. 압수수색으로 확보된 물증 일부는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평가를 받아 배제됐다.
이날 대법원 선고 이후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은 “대법원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로 이 회장에 대한 형사재판은 마무리됐지만 민사·행정소송은 아직 남아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으로 손해를 봤다며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약 5억1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은 계속 진행된다. 일각에서는 이날 대법원 판결이 해당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밖에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2015년 합병으로 인한 보유 주식 가치 하락 등을 이유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낸 임원 해임 권고 등 처분 취소 소송 등이 있다. 증선위 관련 소송은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승소 후 증선위 측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