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 동안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합성니코틴(액상형 전자담배 원료) 규모가 8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8월까지 수입된 합성니코틴 중 98%는 중국산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0년간 합성니코틴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의 국회 논의가 공전하는 사이 중국산 합성니코틴이 가장 큰 수혜를 봤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수입된 합성 니코틴 491t 중 중국산이 481t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합성니코틴은 담배 연초 잎 대신 화학물질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니코틴으로, 주로 액상 전자담배 등에 사용된다. 2021년 중국산 비중은 59%(총수입량 98t, 중국산 58t)에 불과했으나, 4년 새 급격하게 불어났다. 특히 올 1~8월 중국산 합성니코틴 반입량은 2021년 전체 반입량의 8배를 넘어섰다. 액수 기준으로도 중국산 합성니코틴 수입액은 2021년 375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8월 기준으로 이미 2435만달러를 찍었다.
특히 2023년 이후 중국산 수입이 급격하게 늘었다. 2022년 말부터 중국이 합성니코틴의 전면 규제에 나서면서 저가의 중국산 물량이 법망을 피해 한국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대부분 합성니코틴을 사용한 액상 전자담배를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국내 업자는 규제가 도입되기 전 저가 중국산 합성니코틴을 대량으로 ‘사재기’한 사례도 많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담배사업법 개정이 지연된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988년 제정된 현행 담배사업법은 연초 형태의 궐련형 담배만 ‘담배’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합성니코틴을 사용하는 전자담배는 현행법상 ‘담배’로 규제받지 않고, 일반 담배 판매 시 붙는 세금 및 부담금(판매 금액의 최대 약 70%)도 내지 않는다. 궐련형 담배와 달리 광고와 온라인·자판기·스쿨존 판매 제한도 받지 않아 청소년의 흡연율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때문에 2016년부터 담배의 정의를 ‘연초의 잎’에서 ‘연초 밑 니코틴’으로 확대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꾸준히 발의됐으나 번번이 처리가 불발됐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규제를 마련하지 못한 사이 중국산 합성니코틴만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2월 열린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소상공인을 위한 소매점 거리 규제·과세를 유예하는 조항을 마련하는 조건으로 여야가 법안 처리에 합의했으나 또다시 좌초됐다. 당시 기획재정부 측이 ‘합성니코틴을 판매하던 사업자는 합성니코틴만 계속 판매해야 한다’는 문구를 법안에 넣으려고 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반발해 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열린 경제재정소위에 보고된 기재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담배소매점 939곳 중 합성니코틴만 판매하는 점포는 35곳으로 3% 수준에 그쳤다.
박수영 의원은 “청소년과 국민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중국산 합성니코틴이 규제 사각지대인 한국으로 대거 수입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합성니코틴을 현행법상 담배로 규제해야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세수도 증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재부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합성니코틴을 궐련형 담배와 동일하게 과세할 경우 연간 약 9300억원의 세수(국민건강증진부담금 포함)가 추가로 확보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