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13차 연평해전, 들어보셨나요?”…참전영웅에게 날아온 어이없는 ‘초청장’ [심층기획, 아직 그날에 산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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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제13차 연평해전, 들어보셨나요?”…참전영웅에게 날아온 어이없는 ‘초청장’ [심층기획, 아직 그날에 산다②]

업데이트 : 2026.01.21 07:27 닫기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 단독인터뷰
1999년 6월 북한군과 피비린내 교전
20년 넘게 악몽, 술·약으로 버텨왔는데
“사회생활 문제 입증할 자료 없다”며
보훈부, 국가유공자 인정 거부해
서해수호의날엔 ‘엉터리’ 초청장 보내

[안내] ‘심층기획, 아직 그날에 산다’는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재 기사입니다. 전투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심약자와 노약자 및 임산부는 구독 전 주의 바랍니다.

보훈부 청사 앞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표지판. [국가보훈부 제공]

보훈부 청사 앞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표지판. [국가보훈부 제공]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에도 이성민(가명, 48) 씨는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단 건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지만 과거 우리 사회에는 정신과 진료기록이 있으면 취업 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성민 씨도 이 부분에 대한 걱정이 컸다.

옛 전우들과의 소통을 계기로 용기를 냈다는 그는 “2023년 6~7월 ‘동네에 가까운 정신과를 가보자. 전문가한테 우리 얘기를 해보자’면서 각자 병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며 “상담 외에도 몇 시간 동안 문제지 같은 것도 풀어내는 등 진료 항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매경AX는 성민 씨 등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을 지원하는 안종민 국가보훈행정사무소 대표 행정사의 도움을 받아 성민 씨의 의료 기록을 살펴봤다. 그가 2023년 7월 정신건강의학과 A병원에서 받은 진료 기록에는 우울증과 PTSD에 대한 전문가 진단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해 2월 성민 씨가 서울 소재 모 보훈지청으로 받은 통보문 내용 일부. 성민 씨가 제1연평해전 발발 이듬해인 2000년 초반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내용의 정신과 진료 기록이 담겼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지난해 2월 성민 씨가 서울 소재 모 보훈지청으로 받은 통보문 내용 일부. 성민 씨가 제1연평해전 발발 이듬해인 2000년 초반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내용의 정신과 진료 기록이 담겼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여기에는 성민 씨가 무기력감과 수면 장애, 대인 기피증 등의 증상을 호소했으며, 높은 스트레스 척도점수(PSS)와 중증도의 우울척도점수(BDI), 낮은 수면질점수(PSQI)를 기록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 음주자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사람들 때문에 인도를 걸을 때 머뭇거리게 되는 상황,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곳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으며 퇴근할 때는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곳 위주로 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성민 씨가 러시아워 시간을 피하려 일부러 일찍 출근한다는 내용 역시 담겼다.

성민 씨는 이듬해 7월 중앙보훈병원에서도 “자극 과민성, 불안감, 기분의 부정적 변화, 침습 및 회피 증상 지속되는 형태로 향후 정기적인 외래 방문을 통한 약물, 상담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의료 기록으로 국가유공자 신청을 한 그는 예상 밖의 통보를 받았다.

“국가유공자 비해당.”

위 처분에 이의가 있는 경우 이 처분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이의신청이 가능합니다.

2025년 2월 서울 소재 모 보훈지청이 성민 씨에게 전달한 ‘국가유공자 및 보훈대상자 요건 비해당 결정 통보’에는 그가 전상군경·공상군경·재해부상군경 요건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와 함께 신청한 다른 참전용사 7명도 모두 결과는 같았다.

“그동안 직장 잘 다녔으니 정상입니다”

지난해 2월 성민 씨가 서울 소재 모 보훈지청으로 받은 통보문에는 “외상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지연성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니 연평해전으로 인한 PTSD 진단은 경과 및 의료기록 등에 의거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는 문구가 적혔다. 그럼에도 성민 씨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요건 ‘비해당’ 처분을 받았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지난해 2월 성민 씨가 서울 소재 모 보훈지청으로 받은 통보문에는 “외상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지연성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니 연평해전으로 인한 PTSD 진단은 경과 및 의료기록 등에 의거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는 문구가 적혔다. 그럼에도 성민 씨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요건 ‘비해당’ 처분을 받았다. [국가보훈행정사무소 제공]

보훈심사위는 “복무기록에 기록된 내용만으로 (325정) 실제 탑승여부 및 전투 수행 임무 내역 확인 불가”란 점과 “중앙보훈병원에서도 PTSD로 진료받은 기록이 있으나, 최종 진단명으로는 확인되지 않음”을 근거로 비해당 처분을 내렸다. 현행법상 여건에 맞지 않는다는 것.

또 “전역 후 20년 이상 정신과 방문 기록이 없었으며 현재까지 20년 이상 직장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바,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었다고 인정할만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군 공무수행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즈음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성민 씨 등 참전용사들이 국가유공자 인정을 요구하며 국가보훈부와 연락하던 중 “왜 우리는 서해수호의 날(3월 넷째 금요일) 행사에도 빠져있나”라고 항의하자, 보훈부가 부랴부랴 뒤늦게 발송한 초청장이 문제가 된 것.

성민 씨는 “(참전용사) 8명한테 뭐라고 왔냐면 제15연평해전, 제13연평해전, 제1연평해전, 제9연평해전 이런 식”이라며 “저한테 온 게 제13연평해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졌나”라고 묻자 성민 씨는 “엑셀로 긁은 것이겠죠”라고 답변했다.

날 짜개 요
1999년 6월 15일제1연평해전 발발
2023년 7월 OO일*정신건강의학과 A병원에서 진료 시작
2025년 2월 10일국가유공자 심의 결과 ‘비해당’ 결정
2025년 8월 25일국가유공자 재심의 결과 ‘비해당’ 결정
2025년 12월 11일행정심판 청구

첫 국가유공자 신청이 불발된 뒤 참전용사들은 재심의를 요구했다. 2차 심의 결과는 8명 중 4명 해당, 4명 비해당. 그러나 성민 씨는 또 제외됐다. “전역 이후 PTSD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게 비해당 사유였다.

보훈부는 이번에는 “참전한 사실이 확인된다”면서도 “제대 후 다시 학교에 복학하고, 바로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했고, 결혼 초 육아하다 보니 정신없었음이라는 기록은 확인되나, PTSD로 학업·직장에서 뚜렷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자료가 확인되지 않음”이라고 설명했다.

성민 씨의 가슴에 불을 지른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한 보훈 관련 콘퍼런스에 참석한 강윤진 보훈부 차관이 행사 종료 후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신청자) 8명 중 4명이 됐으면 많이 된 거 아니에요?”라고 발언한 것.

강 차관은 또 “그러면 6·25 참전 유공자들은 다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겠네”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논란이 확대되자 같은 해 국회 정무위원회의 보훈부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가 나왔고, 강 차관은 “(해당 발언이) 부적절하다 생각한다”고 공개 사과했다.

그래도 “입대한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출근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출근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 낙인 찍히지 않으려 애써 고통을 무시해온 시간은 그렇게 성민 씨의 발목을 잡았다. 다른 참전용사들도 마찬가지다. 성민 씨는 “사회생활 하면서 겪은 일을 (PTSD의 원인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건데 우리 (비해당) 4명이 다 동일하다”고 말했다.

참전용사들은 지난해 말 보훈부를 상대로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에 대한 재결을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냈다.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심판은 통상적으로 재결까지 3~6개월이 소요된다. 이같은 일을 겪었음에도 그는 “입대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민 씨는 국가유공자 인정을 신청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제 아버지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라며 “자식이 있다 보니까 제가 자랑스러운 아빠이길 바라고, 나중에 기록으로도 그렇고. 그게 제일 큰 바람이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서류 떼러 동네 정신건강의학과를 들렀다. 처음 간 곳이었는데 ‘제가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인데요. PTSD 진단받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니 의사 선생님이 제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떠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9월 8일 남해상에서 한국 해군과 영국 해군이 연합협력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대한민국 해군 제공]

지난해 9월 8일 남해상에서 한국 해군과 영국 해군이 연합협력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대한민국 해군 제공]

이어 “병원을 나오는데 선생님이 제게 ‘나라를 위해서, 나라를 지켜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라고 하시고, 또 간호사 선생님들께 ‘이분 진료비는 받지 말아 주세요’라고 하시더라”며 “감사하고, 마음 한쪽의 (부담을) 살짝 덜어낸 느낌이 들었다”고 부연했다.

국가유공자 신청을 위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요즘이 성민 씨를 비롯한 참전용사들에게는 전에 없이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한다. “전에는 하루 단위로 생각났던 게 지금은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생각난다”고 성민 씨는 말했다. 그 기억을 잊으려고 그는 사비로 치료받고 있다.

젊은 시절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성민 씨의 싸움은 아직 진행 중이다. 모두가 감사해야 함에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참전용사는 오히려 “살면서 이렇게 얘기를 쭉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기자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다음 연재로 이어집니다.

매경AX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한 편견과 사회적 낙인 가능성을 고려, 참전용사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상세한 개인의료정보나 유출 시 국익을 저해할 소지가 있는 군사상 비밀도 비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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