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범죄 급증에 대응망 총정비
공조 기반 이상거래 탐지체계로
피해 발생 전 이체·인출 차단해
다중피해사기 사건 급증하는데
일선 현장에선 후순위로 밀려나
경찰, 전담 수사조직 신설키로
정부가 보이스피싱 등 다중 피해 사기범죄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가운데 각 부처에서 피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나리오형 범죄인 이른바 ‘각본사기’ 수법이 날로 정교해지고, 여기에 속은 피해자가 급증하면서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올해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부처별로 흩어진 기존 대응 체계에서 벗어나 상시 공조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다.
24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위원회는 보이스피싱 피해 징후에 관한 정보를 금융사·통신사·수사기관 간에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금융기관 내 거래 정보로만 운영되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유관기관 정보 연계 기반의 공동 대응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FDS란 금융사가 고객의 거래 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정상 패턴에서 벗어나는 ‘이상 거래’를 자동으로 감지하는 체계를 가리킨다. 이는 보이스피싱이나 명의 도용 등 전자금융사기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 마련됐지만, 번번이 ‘구멍’이 생겨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 현행 FDS는 고객의 평소 거래금액보다 현저히 ‘큰 금액’을 거래할 때만 발동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금융 거래의 ‘사연’은 모른 채 기계적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반면 공조 기반 FDS는 ‘잠재적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관한 정보를 경찰 등이 사전에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활용될 자료는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수집된다. 경찰은 범죄에 활용된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실시해 해당 서버와 통신을 주고받은 이들의 휴대전화 회선 정보를 확보한다. 이후 명단을 통신사에 넘겨 해당 휴대전화 회선의 명의자를 특정하고, 이를 은행들에 공유한다. 은행들은 이를 통해 ‘위험 고객군’인 잠재 피해자를 사전에 파악하고 해당 명의자의 고액 계좌이체나 출금을 중단시킬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앞으로는 경찰이 범행용 서버 기록을 확보한 뒤에는 추가 피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단이 마련된다. 범행용 서버에 대한 수사 절차와 통신사의 명의자 조회 과정이 효과적으로 맞물리면 피해를 막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금융위와 경찰은 오는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도 만나볼 예정이다. 피해자 대다수는 범인의 거짓말에 속아 고액의 금융자산을 본인 손으로 이체·인출하는 과정에서 금융사로부터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지닌다. 공조 기반 FDS가 있었더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행 시스템에서는 ‘눈 밝은’ 은행 창구직원이 “고객님 보이스피싱 아닌가요”라고 제지하는 것이 고작이다. 심지어 ‘각본’에 ‘작업’당한 피해자들은 그런 질문을 듣고 나서도 피싱 조직의 거짓말에 속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가상자산 사기 등 다중 피해 사기 사건에 대한 수사도 강화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다중 피해 사기 사건을 전담하는 상설 수사 조직을 전국 시도 경찰청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대책은 국가수사본부가 조만간 발표할 보이스피싱 등 민생침해 금융범죄에 대한 종합대책에 포함될 예정이다.
현재도 일선 경찰서에서는 ‘피싱전담팀’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정의된 범죄행위인 보이스피싱과 스미싱 등에 한해 수사를 진행한다. 이 때문에 재화 공급이나 용역 제공을 가장한 물품대금 사기(사칭 노쇼 사기), 투자 리딩방 사기 등 추적이 까다로운 범죄는 처리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인력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서울지방경찰청에 가장 많은 인력이 배정될 것”이라며 “전담 조직이 갖춰지면 집중 대응이 가능해져 수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 경로로 악용되고 있는 중고거래 플랫폼 외화거래에 대해 ‘소비자경고’를 발령하며 소비자 주의를 촉구했다. 소비자가 판매한 외화에 대한 대금을 ‘보이스피싱 피해금’으로 송금하는 방식이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굳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통해 얻은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할 필요 없이 외화 현찰을 손에 쥐게 돼 돈세탁이 가능해진다.
반면 외화를 중고거래로 판매한 소비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을 입금받았기 때문에 졸지에 ‘사기이용계좌’로 지정되고, 계좌정지 등 불이익을 겪게 된다.
금감원은 시세보다 좋은 환율을 제시하며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족이 대신 외화를 받으러 간다”며 현금 수거책을 동원하는 점도 특징이다. 아울러 외화 판매자의 계좌번호를 미리 받아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검찰 계좌’ 등으로 속여 송금을 유도한다. 가급적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외화 판매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세호·이소연·문광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