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인력 규모 산정의 핵심 변수였던 ‘의사 1인당 연간 평균 근무 일수’ 논쟁이 사실상 종료된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는 향후 의사 수 산정에서 그간 논의를 교착시켰던 ‘연 265일·290일’ 근무일수 논쟁을 제외하고, 대신 ‘번아웃 가능성’ 등 질적 요소를 반영하도록 논의 방식을 전환하기로 했다. 상당수 의사가 과로 상태라고 평가되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필요 의사 수 추계가 기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학계 265일 vs 의협 289.5일…“합의 불가능” 판단
21일 한국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추계위의 이러한 논의 전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OECD는 최근 추계위를 지원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에 “의사 근무 일수는 중요하지 않고 측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근무 일수보다는 근무 강도, 근무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보건기구(WHO)와 OECD는 보건의료인력이 주 50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번아웃 및 우울 위험이 증가한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WHO는 주 50시간 이하 근무를 권고하고 있다.
현재 7차 회의까지 마친 추계위는 당초 연말까지 필요 의사 수 산정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의사들의 연간 근무 일수를 둘러싼 학계와 의료계의 이견으로 논의가 장기간 교착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학회 추천 인사인 정형선 위원(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은 지난 10월 27일 열린 6차 회의에서 “290일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정돼 있는 인원수 전체가 토요일까지 풀(full)근무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반대 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학계 측은 지난 3월 열린 의사 수 추계 논문 발표회에서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제시한 기준을 토대로 연간 근무 일수는 265일이 적정하다고 주장해왔다. 법정 공휴일과 주말을 제외하면 실제 진료가 가능한 날이 약 265일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반대로 문석균 위원(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 연구원)은 같은 날 회의에서 “나도 근무 시간이 320일이 넘는다. 의사들이 289.5일을 일하는 이유가 있다. 저수가라 못 먹고 산다”고 주장했다. 이는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한 주장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이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인 ‘2020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의사들의 실제 연간 근무 일수는 평균 289.5일, 월평균 근무 일수는 24.1일로 조사됐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보사연은 양측 주장 모두 ‘참값’으로 보기 어렵다고 최근 결론을 내렸다. 추계위 간사인 신정우 보사연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장은 “학계 측 논리만으로 290일을 참값으로 판단하기는 어렵고, 의사 측 주장도 응답률이 11%에 불과한 설문조사 기반이라 대표성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근무 일수 대신 번아웃 가능성 본다
향후 추계위는 특정 연도 의사 근무량을 기준치(100)로 두고 지수화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환할 예정이다. 예컨대 2024년에 실제 국내 의사들이 수행한 총노동량(진료·수술 등)을 100으로 설정한 뒤, 그 노동량이 적정한지, 과도한지 판단해 필요한 의사 수를 계산한다는 것이다. 노동량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필요한 의사 수가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감내할 수 있다고 합의되면 역으로 필요한 의사 수가 감소하게 된다.
다만 최근 여러 조사에서 상당수 의사가 과도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고 있는 만큼, 질적 요소가 평가 항목으로 적용될 경우 의사들의 현재 노동 수준이 과도하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2022년 기준 OECD 평균 활동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3.7명인 반면, 한국은 2.6명 수준에 불과하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의과대학 교수 10명 중 6명은 번아웃(탈진) 상태에 있으며, 주당 평균 74시간의 격무에 시달린다. 노동량을 분산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 수가 기존 추계보다 높게 산정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량 지수 기반 산정 방식은 특정 집단의 주장이나 조사 응답률에 좌우되지 않아 추계의 객관성·예측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노동량의 적정 수준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의료계·학계·국민 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새로운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추계위는 오는 24일 열리는 8차 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한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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