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수익만 노리는 벤처캐피털…투자한 10곳 중 7곳 '경영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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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자기업의 경영 활동에 관여하지 않는 ‘방치형’ 벤처캐피털(VC)이 늘어나고 있다. VC가 단기 수익 실현에만 몰두해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키우는 ‘모험 자본’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수익만 노리는 벤처캐피털…투자한 10곳 중 7곳 '경영 방치'

21일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창업 이후 ‘경영관리 지도 또는 자문’을 받은 피투자기업은 전체의 31.7%에 불과했다. 2021년 같은 조사에선 피투자기업의 68.3%가 VC로부터 경영관리 지도 및 자문을 받았다고 답했다. 2년 만에 응답률이 반토막 났다.

이사회 중심 경영 방식을 채택해 투자 이후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미국 등 해외 선진 VC와 달리 국내 VC 이사회는 형식적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벤처투자플랫폼 더브이씨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VC 심사역 중 피투자기업 등기임원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상위 10명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이들이 재직 중인 곳은 총 116곳이었다. 상위 10명 중 글로벌 VC 출신 심사역 6명이 116곳 가운데 92곳(79.2%)을 담당했다. 토종 VC 심사역 4명은 나머지 24곳에 사외이사 등으로 등재됐다. 1명당 평균 6개 피투자기업의 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국내 VC에 비교해 글로벌 VC는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평균 15개 기업 경영에 관여한 셈이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수시로 회사의 문제점과 방향성을 짚어주고 인적 네트워킹을 꾸준히 지원하는 글로벌 VC와 달리 대다수 국내 VC는 투자 이후 사실상 ‘연락 두절’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VC가 피투자기업 경영에 조언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VC에서 투자받은 기업은 4697곳으로 2023년 4026곳 대비 1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충원된 VC 전문 인력은 97명으로 6.6%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 국내 VC 심사역은 “인력난이 심각한 국내 VC에선 한 사람이 30~40개 이상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야 할 때도 있고, 새로운 투자처 발굴까지 해야 한다”며 “불확실한 스타트업 여러 곳을 관리하기보다 성공한 스타트업 몇 곳을 집중 관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VC협회가 내부 ‘이해상충 방지 가이드라인’ 등으로 경영 목적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피투자기업이 파산하면서 이들과 VC 간 소송도 발생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선 VC 투자를 많이 받을수록 피투자기업 이사회 의석에서 VC와 독립 사외이사 비중이 커진다. 자금 조달 초기에는 창업자와 창업 멤버 임원에게 지배권이 주어지지만 두 번째 라운드부터는 VC 출신 이사가 더 많아져 지배권이 VC 쪽으로 넘어간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경험이 부족한 피투자기업이 제대로 된 경영 자문을 받지 못하면 성장이 둔화하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 헥토콘(기업가치 1000억달러 이상) 수준의 기업을 배출하기 위해선 VC가 단순 재무적 투자자(FI)에 머물지 않고 경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훈/고은이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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