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라. 찾아라. 당신에게 발이 달린 이유다.” 일본 동화작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말이다. 변화가 오면 새롭게 생성하고 진화해온 생존의 비유적 표현 같다. “도망쳐라”는 “변화를 수용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인공지능(AI)이 몰고 오는 변화도 예외가 아니다. 열린 자세로 외부를 소환(召喚)하고 담을 허물어 월경(越境)하는 기제(mechanism)가 일상의 철학이 돼야 할 판이다. 그냥 앉아서 죽지 않으려면 말이다.
역사적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선 지역이 있다. 작은 언덕에서 제국이 된 로마, 항구에서 민주주의 발상지가 된 아테네의 고대 서사부터 그렇다. 근대 산업혁명기 맨체스터는 농촌에서 세계 공장이 됐다. 현대에 와서도 그렇다. 영국 식민항에서 아시아 허브가 된 싱가포르, 사막 어촌에서 중동 허브가 된 두바이, 작은 어촌에서 하드웨어 실리콘밸리가 된 선전(深川) 등이 있다. 변방의 파괴적 혁신론의 사례들이다.
국가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 가운데 한국 같은 드라마가 없다. 제3세계 국가의 경제적 예속을 다룬 종속이론이 학계를 강타한 적이 있지만 한국은 그 결정적 반증으로 꼽힐 정도다. 국가와 리더의 전략적 선택과 내부 동력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이런 한국에서 정작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담론은 지역판 종속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까지 중앙정부와 수도권 탓으로 돌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역과 리더는 과연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하고 내부 동력을 이끌어내고 있는가.
돌아보면 지역 내부 탓이 더 클지 모른다. 지역 청년이 수도권으로 떠나든 말든. 지역 리더의 꿈 크기가 딱 거기까지였다. 내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기득권 토착 구조야말로 지역 성장을 가로막는 근원이라는 한탄이 나온다.
그동안 지역에는 공장만 남고 연구소는 모조리 수도권으로 나간다는 구도였다. 젊은 인재는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지역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자조가 넘쳐났다. 고착화될 것만 같은 이 프레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아닌 AI가 몰고 온 변화다. 특히 주목할 것은 AI 기반 풀스택(full-stack) 신(新)공장 시대의 도래다.
지역 공장이 제조AI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결정적 이유가 있다. 이대로 가면 중국의 속도에 추월당하고, 미국과의 분업 기회도 놓칠 판이다. 연구소는 수도권으로 가고 공장만 지역에 남으면 제조AI는 불가능하다. ‘모델 따로, 데이터 따로, 실증 따로’ AI 전환이 성공할 리 만무하다. 공장과 연구소는 함께 가야 한다. 공장이 수도권으로 올 수 없다면 연구소가 지역으로 올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창업이 AI 수요가 있는 공장 주변에서 일어나야 한다. 전기 에너지원 및 생산·소비 패러다임 변화도 이 흐름을 지지한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역이 이 기회를 잡으면 대전환점을 확보할 수 있다. 성장의 변혁적 반란을 일으킬, 그것도 수도권 2부 리그가 아니라 글로벌 1부 리그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부울경으로 불리는 부산·울산·경남이다. 근거는 차고 넘친다. 당장 조선(제조)과 해운(금융)을 연계한 해양수도 잠재력이 그렇다. 북극 항로 시대 기회의 땅이다. 우주·항공·국방·기계·재료·조선·자동차·비철금속·배터리·석유화학 등은 경제와 안보의 교집합이다. 이 지역은 경제·안보산업의 최대 허브다. 인접 경주와는 원전 벨트로 이어진다. 철강도시 포항과는 수소 생산과 활용, 저탄소 강재와 그 수요까지 수소클러스터 창출이 가능하다. 이런 지역이 세계 어디에 또 있나.
부울경+경주·포항은 거대한 산업 펜타곤이다. AI 기반 제조와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시회로 유명한 하노버 메세를 능가할 부울경 메세를 꿈꾸지 말란 법도 없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 포스텍 등 연구중심대학은 수도권으로의 인재 유출 우려를 글로벌 인재 유입으로 날려버릴 핵심 무기다. 통째로 규제혁파지구로 가면 혁신의 속도전이 가능하다. 외부 변화를 받아들이고 월경을 감행할 용기만 있다면.
그래서 제안한다. 지역이 주체성을 갖고 진짜 자치를 열 정치 지형을 창출하면 어떤가. 변방 지역이 수도권을 제치고 동북아시아, 아시아, 아니 세계 중심이 되는 꿈을 갖고 판을 엎어보자. 6·3 지방선거에 거는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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