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관료제가 만든 난쟁이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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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관료제가 만든 난쟁이의 나라

우리나라 관료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강력한 수준이다. 생활 구석구석을 인허가로 옭아매는 촘촘함은 조선 시대나 사회주의 국가를 넘어선다. 문서와 절차로 쌓아 올린 통제 및 규범 주도성은 로마제국이나 프로이센을 능가한다. 관료제 특유의 인사와 정책, 의사결정 스타일이 사회 전반에 침부해 있는 정도는 오늘의 튀르키예나 일본보다 깊다. 한국은행 공공부문 계정을 보면 2024년 공공부문 총지출은 약 1200조원으로, 같은 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2557조원의 약 47%에 이른다. 나라 자원의 절반을 사실상 관료제가 배분한다. 집단으로서 이만큼 강력한 단위는 역사상 찾아보기 어렵다.

강력한 관료제의 부작용으로 나라 미래가 깜깜해지고 있다. 첫째, 선발 과정에서 독특한 스타일의 사람만이 추려진다. 잘 외우고 몇 년을 꾹 참고 엉덩이로 버텨낸 사람들. 정해진 답을 빨리 맞히는 재주는 길러도, 없는 길을 내는 상상력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가 그런 사람들의 지도와 관리로 가능한 시대인가. 둘째, 성과가 개인에게서 드러나지 않는다. 능력을 펼칠 기회를 처음부터 주지 않는다. 튀는 개성은 무시된다. 그러니 개성 강하고 발랄한 국민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라의 창의성과 다이내미즘은 꾹꾹 짓밟히며 산산이 부서진다.

셋째, 정년을 보장하니 위기감이 없다. 무능하고 답답한 상사에게 코드를 맞추는 퇴행이 만연해 있다. 세상은 인공지능으로 답을 찾고, 더 나아가 새로운 문제를 찾아 나선 지 오래됐는데 안에서는 답을 외워 점수를 매긴다.

넷째, 사고를 치지 말자는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다. 국민의 요구가 너무 어렵거나 자신들의 이해에 상반되면 잠시 물러섰다가 결국은 사탕발림, 말장난, 개념 왜곡을 이용해 기존 논리와 이익 구조를 고수한다. 개인적인 리스크 최소화는 관료사회 생존의 첫 번째 공식이다. 혁신과 아이디어 창발은 돌발행위로 치부된다.

다섯째,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전제한다. 영수증을 붙이고, 사기를 치지 않았다는 증빙을 하게 한다. 이런 요구가 수많은 제도와 행정 절차에 녹아들어가 있다. 한 사람의 부정을 막겠다고 정직한 다수를 옭아맨다. 그렇게 아낀 푼돈보다 잃어버린 시간과 의욕이 훨씬 더 크다.

여섯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위험과 부담은 국민과 민간에 떠넘긴다. 그래 놓고 “사고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며 으름장만 늘어놓는다. 선진국에서 자유롭게 이뤄지는 실험과 임상이, 여기서는 법과 눈치에 막혀 시작조차 못 한다. 그 두려움 앞에서 새로운 시도는 싹부터 잘린다. 그렇게 지킨 것은 안전이 아니라 안심이었다. 유사시에는 당황하고 어리둥절해한다.

문제는 관료제가 자기 울타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괴물이 돼 관료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넘실대고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물론 이들에 종속된 금융·보험·통신·에너지·첨단 등 독과점 산업, 그리고 과학기술계와 대학까지 모두 관료제로 퇴행해버렸다. 감사에 대비하느라 새 일을 벌이지 못한다. 도전보다 변명이, 책임보다 면피가 앞선다.

관료제는 한때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연적이었다. 그 안에서 빼어난 리더도 숱하게 나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신화로 전락한 지 이미 십수 년이다. 세상은 이미 다른 속도로 달린다. 국가의 이익을 둘러싼 경쟁은 노골적으로 파괴적이다. 게다가 우리 입장도 식량을 얻어먹던 나라에서 몇몇 분야에서 전략적 지위를 인정받는 선진국으로 바뀌었다. 정치와 관료제의 짬짜미로 적당히 남을 모방하고 자기를 숨기는 난쟁이는 이제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한두 번의 실패나 아둔함으로 수십 년간 쌓아온 노력이 무너질 수도 있다. 리더십이 완전히 변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개인이 거인의 힘을 손에 쥐는 시대다. 뒷주머니에 슈퍼맨의 장비인 스마트폰을 꽂고, 안경 너머로 인공지능(AI)의 조언을 받는 ‘슈퍼 개인’의 세상이 돼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자신을 키우고 사회를 끌고 가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거인들이 공존하는 미래에 걸맞은 제도와 의사결정 시스템을 고민하고 실험하기 시작해야 한다. 난쟁이의 나라를 이제는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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