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여러 차례 영화로도 제작된 고전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개츠비는 부유한 상류층 여성 데이지를 사랑한다. 하지만 상류층 출신 톰에게 밀려나며 개츠비는 자신의 배경이 사랑을 가로막는 걸림돌임을 절감한다. 개츠비는 부를 쌓아 상류 사회 진입을 노리지만 혈통과 교육, 기득권으로 뭉친 상류층의 벽 앞에 좌절하고 사랑 또한 비극으로 끝난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앨런 크루거는 개츠비가 재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데이지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 점에 주목해 ‘위대한 개츠비 곡선’(Great Gatsby Curve)을 제시했다. 이 곡선은 소득 불평등이 클수록 세대 간 계층 이동성(부모 세대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 세대에 대물림되지 않고 변화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즉, 소득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노력과 재능보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소득 불평등보다 계층 이동성 자체에 주목한다. 계층 이동성이 확대되면 소득 불평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낮은 계층 이동성은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
우선 저소득층 자녀가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이는 사회 전체의 인적 자본 축적을 저해해 총체적 생산 능력과 기술 진보를 지연시킨다. 둘째, 노력해도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동기가 사라져 사회 전체의 역동성과 기업가정신이 위축된다. 이는 기업의 혁신과 생산성 향상 동력을 떨어뜨린다. 셋째, 불평등 고착은 정치 사회 갈등을 심화하고 제도의 신뢰를 약화해 경제 사회 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결국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고 시장 경제 근간을 훼손해 투자 위축과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흙수저’ 출신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계층 간 이동에 대한 좌절감이 크다. 국회 교육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신입생 중 고소득층 가구 비중이 50%에 육박한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하위 10%가 중간 소득 수준에 도달하는 데 평균 다섯 세대가 걸린다. 2~3세대인 덴마크와 핀란드에 비해 계층 이동성이 현저히 낮다. 특히 한국에서는 소득 불평등보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 불평등이 계층 이동성을 낮추는 주요인이다.
최근 국정기획위는 ‘진짜 성장’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국민 모두가 역량을 키워 폭넓게 참여하는 성장’을 제안했다. 필자는 이를 실현하는 핵심 열쇠가 바로 계층 이동성 회복이라고 본다. 다음 네 가지 전략은 OECD를 비롯해 국제기구 보고서들이 특별히 강조하는 내용이다. 첫째, 교육 기회의 균등화다. 누구나 사회 경제적 배경에 관계없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이는 사회 전체의 인적 자본 형성과 성장의 기반이 된다. 둘째, 공정한 노동시장 구축이다. 채용 및 승진이 출신과 연줄이 아니라 개인 능력과 성과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과에 따른 보상이 가능한 직무급 임금 체계로 전환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 동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부당한 격차를 줄이는 등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해소해야 정당한 보상이 가능해진다. 셋째, 자산 격차 완화다. 저소득층도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자산 형성 기회를 늘리고 최소한의 주거 기반을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 안전망 강화다.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따른 경제적 추락이 하향 고착화되지 않도록 회복과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국정기획위의 진짜 성장 전략이 단순한 국내총생산(GDP) 수치 확대가 아니라 기회와 포용 회복을 강조한 점은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핵심 경로인 계층 이동성 회복에 관해 언급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츠비가 끝내 넘지 못한 계층의 벽을 어떻게 허물고 모든 이에게 가능성을 여는 사회를 만들지 고민하는 일이다. 계층 이동성이 높아질 때 비로소 모든 개인의 잠재력이 꽃피고 진짜 성장도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