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AI 강국의 조건, 원전이라는 성장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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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AI 강국의 조건, 원전이라는 성장 인프라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나 산업국가로 도약할 수 있던 건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정부 주도의 기반시설 투자 덕분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랬고, 포항제철이 그랬다. 당시에도 “너무 이르다” “지나치게 비싸다” “과잉 투자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무모한 도박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결단이었다. 국부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공공 인프라에서 축적됐다. 한국 원자력발전소 1호인 고리 1호기 건설도 당시로 보면 만용에 가까웠다. 한 해 예산의 4분의 1,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네 배에 가까운 돈을 투입했다. 그러나 바로 이 원전 위에서 반도체, 정보기술(IT) 등 우리나라 핵심 산업이 자라났다.

지금 한국이 맞닥뜨린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여전히 AI를 소프트웨어 산업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AI는 연산의 기술이고, 연산은 전력 위에서 돌아간다. 알고리즘이 아무리 뛰어나도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가 없으면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앞으로 AI는 더 좋은 모델을 누가 먼저 만드느냐의 경쟁인 동시에 그 모델을 누가 더 싸고 안정적으로 오래 돌릴 수 있느냐의 경쟁이 될 것이다. AI 경쟁력은 결국 전력 인프라에서 나온다.

최신 고성능 AI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서버와 냉각 설비까지 감안해 대당 연간 1만킬로와트시(㎾h) 안팎의 전력을 사용한다. 산업용 전력 요금으로 180만원어치 전기를 쓰는 셈이다. GPU 한 개의 전력 사용량은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의 전력 사용량과 같은 수준이다. 즉 GPU 한 개가 국민 한 명이다. 생산성 차이는 그보다 훨씬 크다. GPU가 늘어나면 인구가 증가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AI 전력이 지금은 몇몇 기업과 연구소 문제로 보일지 몰라도 에이전틱 AI와 로봇이 일상화하고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공장, 첨단 제조업의 전기화까지 동시에 이뤄지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1000만 명이 고강도 AI를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사회를 상정하면 국가 전체로는 원전 10기 이상 추가 전력이 필요해진다. AI는 더 이상 디지털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전력계획에 반드시 반영해야 할 새로운 산업 수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원자력의 중요성이 재차 부각된다. 물론 재생에너지 확대도 필요하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이 요구하는 것은 24시간 멈추지 않는 고밀도 전력이다.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전원만으로 산업의 심장을 떠받치기 어렵다. 국토가 좁고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값싸고 안정적이며 탄소 배출 부담까지 없는 전기를 대량 공급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원자력을 중심에 놓지 않기는 어렵다.

더구나 한국은 원전을 새로 배워야 하는 나라가 아니다. 설계하고, 건설하고, 운영하고, 수출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경쟁력을 지녔으면서도 정작 그 반도체와 AI산업을 떠받칠 전력원을 주저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제 원전은 정쟁 대상이 아니라 성장 도구로 봐야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공급망 정책의 초석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AI 육성론이 아니다. 10년 후를 대비해 원전 10기 안팎의 신규 전력을 국가 목표로 제시하고 이를 데이터센터, 반도체, 첨단 제조업 전략과 함께 묶어야 한다. 원전은 단지 발전소가 아니다. AI의 토대이고, 산업의 보험이며, 미래 국부를 떠받칠 인프라다.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나라가 AI를 더 넓게, 더 깊게, 더 오래 쓸 수 있다. 부국의 조건은 화려한 비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반시설에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이 그랬듯, 한 시대의 도약은 늘 선제적인 인프라 투자에서 비롯됐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도 다르지 않다. 말로만 AI를 외칠 것인가, 실제 AI를 가능하게 할 전력을 준비할 것인가. 대한민국이 AI를 소비하는 나라에 머물지, AI를 국부로 바꾸는 나라로 올라설지 지금 결정된다. 국가 전력 수급계획에서 신규 원전을 대폭 반영하자. AI와 원자력의 결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부국은 선언에서 오지 않는다. 전력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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