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장정원 씨(31)는 최근 ‘피크민 블룸’이란 게임에 푹 빠졌다. 닌텐도의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으로 요즘 장 씨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이 게임을 하며 보낸다. 최근엔 게임 굿즈까지 사모을 정도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최대한 저축하고 있지만 이 피크민 블룸에 대한 것만큼은 지출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는 ”워낙 좋아하는 게임이라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며 “옷도 사지 않고 외식도 줄이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닐 정도로 돈을 아끼고 살지만 피크민 관련 제품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무조건 구매한다”고 했다.
봄 시즌을 맞아 유통기업들이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캐릭터 협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늘었다. 캐릭터 제품들이 더 이상 마니아층의 전유물이 아닌 MZ세대의 새로운 문화 소비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구매력이 높은 1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피크민 열풍이 불면서 다양한 제품군에서 이 캐릭터 상품을 속속 내놓는 중이다. 이 캐릭터와 협업한 제품은 내놓기만 하면 ‘완판’이라는 흥행이 보증되기 때문이다.
판매량 181% 껑충
이랜드월드의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 스파오에선 파자마 티셔츠 후드 티셔츠 머그컵 등 다양한 피크민 협업 상품들을 출시해 매출 증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스파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스파오 홍대 AK점에선 피크민 협업 상품을 첫 공개했는데 그 직후 매출이 전주 같은 요일(3월21일)과 비교해 181% 급증했다. 어느 정도 인기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매장 측에서 기대한 매출보다 상승폭이 훨씬 더 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는 매출이 178% 늘었다.
협업 상품을 구매하거나 매장을 방문할 경우에 게임에서 쓰이는 아이템을 받을 수 있는 인게임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몰리면서 오전 이른 시간부터 오픈런 현상이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제품 출시 당일 방문자 수는 평소 대비 약 3배 이상 많았다.
온라인에서도 관련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 내놓은 제품마다 완판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온라인몰인 스파오닷컴에선 피크민 협업 상품이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30분 만에 출시한 모든 수량이 동났다. 여전히 수요가 많지만 남은 물량이 없어 브랜드 측이 공급업체에 재주문에 넣었으며 리오더 물량에 대해 예약 판매만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랜드 스파오 관계자는 “전 상품이 품절 대란을 겪었으며 피크민 반팔 파자마와 같이 특히 인기가 더 많은 제품들은 한 차례 리오더만으로도 부족해 2차 재주문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전했다.
'디토' 소비…국내서 안팔면 해외 직구라도
피크민은 특히 뉴진스가 즐겨 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사용자가 현실에서 실제로 걷거나 이동하면 게임 내에 식물 모종이 나타나며, 이를 화분에 심고 걸음 수를 채우면 귀여운 피크민 캐릭터가 생성되는 방식의 게임이다.
실제 피크민 블룸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지난해 12월 144만명을 기록하며 지난해 9월 10만명보다 껑충 뛰었다. 이 게임은 '도파민 디톡스' 게임으로 불리며 MZ세대 사이에게서 인기 게임으로 등극했다. 봄철 걷기 좋은 날씨와 맞물려 더욱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소식이다.
피크민 열풍은 셀럽의 소비 취향을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이른바 '디토(ditto) 소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달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서 열린 피크민 팝업스토어에서도 그 인기가 증명됐다. 인형, 꽃병 등 다양한 피크민 굿즈를 살 수 있고 AR등 직접 체험활동도 가능한 이 팝업은 백화점이 문을 열자마자 줄을 서도 최대 8시간은 대기를 해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방문 대란이 일었다.
글로벌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가 한정 출시한 ‘고디바X닌텐도 컬래버레이션’ 제품도 작은 초콜릿 10개가 들어있는 한 세트가 4만2000원, 4개짜리가 2만5000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였지만 일부 품목은 금세 완판될 정도로 흥행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국내 출시 전 먼저 제품이 나온 일본 등에서 해외 직구를 해서 사먹을 정도였다.
업계 관계자는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는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희소성 높은 제품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며 "한정된 기간에 오프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협업 상품을 통해 희소성과 특별함을 제공하는 전략이 소비자 발길을 매장으로 이끄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