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속으로…반가사유상과 만난 민중미술 거장

2 days ago 6
문화 > 전시·공연

내면 속으로…반가사유상과 만난 민중미술 거장

업데이트 : 2026.05.25 17:19 닫기

이종구 학고재 개인전 '사유'
두번의 수술과 투병의 삶
죽음이라는 본질에 천착
"묵묵하고 정직한 태도로
농사짓는 것처럼 그려내"

이종구의 '불이(不二)무무명',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30㎝.  학고재 갤러리

이종구의 '불이(不二)무무명',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30㎝. 학고재 갤러리

밖으로 향하던 저항의 붓끝이 내면으로 향했다. 두 번의 큰 수술을 받고 생사의 기로에 섰던 민중 미술 작가의 대변신이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8년 만에 개인전 '사유'를 펼치는 이종구(72)다. 그는 1980년대 정부미 쌀 포대 겉면에 농민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고발하던 농민 화가였다. 하지만 이제 그의 캔버스에는 환자복을 입은 채 링거줄을 치렁치렁 달고 있는 자신의 몸과 평온함이 깃든 반가사유상, 천년 세월을 품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가득하다. 사회의 부조리와 정치 권력을 고발하던 예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번 전시에 신작 38점을 내놓은 작가는 "그림으로 싸우다가 내면으로 왔다"며 "정년퇴임(중앙대 교수)과 코로나19, 병고가 찾아오며 5년 전부터 반가사유상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삶과 죽음, 너와 나, 자연과 인간 등 서로 달라 보이는 두 가지가 실제로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이 담겨 있다. 갈등과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날 세계에 해답을 줄 것이라는 게 작가의 믿음이다.

그는 10여 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데 이어 수년 전에는 장폐색으로 대장을 50㎝나 잘라내는 대수술을 겪었다. 작가는 살이 20㎏이나 빠져 앙상해진 자기 몸을 특유의 사실주의 기법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는가 하면, 퇴원 후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초로의 모습을 그 옆에 나란히 배치하기도 했다. 그는 "환자일 때 살기 위해 링거를 잡고 있는 것처럼 퇴원하니 생계를 위해 온종일 휴대전화를 잡고 있게 되더라"며 "결국 이것이 삶이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부좌를 튼 20대 여성의 누드화와 불상의 모습이 시선을 압도한다. 화면 속 여성의 머리 위에는 번뇌를 상징하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지만, 그 옆에서 동일한 자세로 가부좌를 한 불상은 그 불꽃을 고요히 꺼트리고 있다. 대조적인 두 화면은 이분법적 분별을 넘어서는 '불이'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서면 불상들로 가득한 깊은 사색의 공간이 펼쳐진다. 촛불을 지그시 응시하는 반가사유상, 개 한 마리와 나란히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 각종 누드와 함께하는 반가사유상 등 그 변주는 다양하다.

화면에 개가 등장하는 것은 조주선사와 관련이 있다. 조주선사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없다'고 답하며 불교사에 유명한 '무(無)'자 화두를 던진 인물이다.

충남 서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작가는 아버지가 땀 흘리며 농사짓듯 정직하고 묵묵하게 그림을 그려왔다고 고백한다.

"1980년대 아버지가 3년 키워 판 소값이 250만원이었는데, 제 그림값이 그보다 높은 450만원이었어요. 뭔가 당당하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그리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점 하나 찍고 수억 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꼿꼿한 예술가적 양심을 바탕으로 고향인 서산 오지리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1988년 작품은 202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계보: 메트의 한국미술' 특별전에 걸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정직한 손맛으로 그린 시대의 얼굴에서 생로병사를 겪는 모든 존재에 대한 포용이 묵직한 울림을 준다. 전시는 6월 20일까지.

[이향휘 선임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