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잠복 조사관에게 장애를 증명하기 위해 남매는 불편한 몸을 ‘전시’하기 시작한다. 누나는 한쪽 팔이 성치 않은 몸으로 동생의 휠체어를 밀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한 팔로 휠체어의 무게를 버티느라 숨을 헐떡이는 모습은 섬뜩할 지경이다.
지난달 24일 출간된 앤솔러지 소설집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창비)의 첫 작품인 편혜영의 ‘재배의 경제’ 속 장면이다. 편혜영, 최진영, 정한아, 정보라, 예소연 등 다섯 여성 작가가 참여한 이 소설집에는 어딘가 ‘미쳐 보이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뒤틀려 있고 위태롭다.
하지만 책은 제목 그대로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개인이 본래부터 광기 어린 존재였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회와 구조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가령 편 작가의 소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자원이 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소설 뒤에 실린 작가 노트는 작품의 문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편 작가는 “삶으로부터 도망치려다 주저앉고 마는 여자들, 인생에 별로 바란 게 없는데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은 여자들 이야기는 언제나 내가 겪는 가장 슬픈 이야기”라고 했다. ‘부서지는 여자’를 쓴 정보라 작가는 “억압이 사람의 마음을 부순다. 그런 세상이 여자를 미치게 만든다”고 썼다. 결국 이 소설집이 말하는 것은 ‘미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세계의 이야기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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