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단어라는 피리를 불 뿐… 그 소리 홀린 분들이 따라오죠

5 hours ago 3

장편소설 ‘절창’ 구병모 작가
신작에도 예령-오언-분요 등 표현
“쓰이지 못한 낱말들 너무 아까워
독자들 다른책 볼 땐 편해지겠죠”

신간에서 가장 아끼는 구절이 있는지 묻자 구병모 작가는 “‘이건 킥이다’ 싶은 문장이 있다”며 작중 인물들이 주고받는 문답을 소개했다. “비극보다는 희극이 좋아?” “뭐든 상관없지 않나요. 어차피 다 거짓말이니까.” 구병모 작가 제공

신간에서 가장 아끼는 구절이 있는지 묻자 구병모 작가는 “‘이건 킥이다’ 싶은 문장이 있다”며 작중 인물들이 주고받는 문답을 소개했다. “비극보다는 희극이 좋아?” “뭐든 상관없지 않나요. 어차피 다 거짓말이니까.” 구병모 작가 제공
소설가 구병모(49)는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데뷔할 때부터 매일 10∼20쪽씩 사전 읽기가 취미였다. 2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 들고 다니기도 벅찬 두꺼운 탁상용 사전이었다. ‘파과’ 같은 낯선 단어 제목의 작품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그의 힘이 어쩌면 이런 사전 탐독에서 나온 건 아닐까.

지난달 펴낸 신작 장편소설 ‘절창’(문학동네)도 마찬가지다. 예령(豫鈴·시각을 알리는 종), 오언(烏焉·모양이 비슷해 틀리기 쉬운 글자), ‘분요(紛擾·요란스럽다)’ 등 낯선 단어의 향연이다.

독자 후기를 보면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동아일보 전화 인터뷰에 응한 구 작가는 “독자들께서 계속 사전을 찾게 만든다는 점에서 죄송하기도 하다”면서도 “이번에 조금 고생해서 사전을 찾다 보면 다른 책을 읽을 때는 걸림돌이 전혀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소설은 ‘상처를 만지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다뤘다.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초감각능력)의 매개가 ‘상처’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사이코메트리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나아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구 작가는 “우리는 타인이란 텍스트를 늘 오독하지만, 계속 실패할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읽어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며 “아마 그건 인간의 본능일 것”이라고 했다.

보통 이런 장르에서 주인공은 경찰 수사를 돕거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방향으로 능력을 활용한다. 하지만 구 작가는 이런 설정을 거꾸로 뒤집는다. 만약 초능력이 철저히 나쁜 일에만 쓰인다면?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소설가들이 글을 쓰며 답을 찾는 경우는 드물어요. 오히려 함께 고민하고 싶어 계속 질문을 소설로 던지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답을 찾았다, 유레카!’ 한다면, 그 순간 이후로는 오히려 글을 쓸 동력을 잃지 않을까요? 하하.”

실은 제목인 ‘절창(切創)’도 낯선 단어다.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라는 뜻이다. 역시 일상에선 잘 쓰이지 않는다. 그는 “처음 출판사에 제목을 가져갔을 때, 절창(絕唱)인 줄 알고 ‘명창’이나 ‘서편제’가 먼저 떠오른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마침 원고를 넘길 당시는 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파과’가 개봉한 직후였다. 구 작가는 “파과라는 단어 역시 일상에서 흔히 쓰이지 않지만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었던 경험이 있으니, 절창도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탁상용 사전이 2000쪽이라고 하면, 우리가 평생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지나치는 낱말이 훨씬 더 많잖아요. 아예 쓰이지도 못하고 덮이는 말들이 너무 아까워요.”

낯선 단어가 독서의 장벽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구 작가의 팬들은 사전을 찾아가며 소설을 읽는다. 어떤 독자는 단어장을 따로 만들어 정리해 가며 읽는다고 한다. 구 작가는 “제 방식이 마음에 드는 독자들이 꾸준히 모이고 있는 것 같다”며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계속 피리를 불고 있고, 그 소리가 마음에 드는 분들이 따라오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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