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건희 회장 유지 기리며
서울대병원 어린이날 행사
소아암 환아·가족 등 한자리
마술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
응원과 격려의 시간도 나눠
이건희 회장 유족 3천억 기부
4년 동안 어린이 5512명 치료
"언젠가 사슴벌레를 봤는데, 그때부터 곤충의 매력에 빠졌어요. 올해 어린이날에는 동생과 함께 커다란 테라리엄을 만들고 싶어요."
곤충학자를 꿈꾸는 11살 김현우 군(가명)은 최근 만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제를 투여하고 있다. 거듭되는 외래 진료에 지칠 법도 하지만 씩씩하게 병마와 싸우고 있다. 김군은 서울대병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소아 혈액암 환자들이 더 나은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전체 분석 연구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김군처럼 투병 중에도 자신의 미래를 키워 가는 어린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뜻깊은 어린이날을 선물하기 위해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단장 최은화)은 2일 서울대어린이병원 CJ홀에서 '우리들은 자란다' 행사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모인 환자·가족들과 의료진 등 200여 명은 서로의 고충을 공유하고 응원과 격려를 주고받으며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 행사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아 소아암·희귀질환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핵심 슬로건인 '아픔은 멈춤이 아니다' 'kids never stop' 등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자라는 위대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2021년 서울대어린이병원 등에 3000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이날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순서는 단연 매직쇼였다. 진행을 맡은 이은결 일루셔니스트는 '꿈이 현실로 변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자리를 찾았다. 이날 공연료 전액을 서울대어린이병원에 기부한 그는 "비록 아이들의 아픈 몸을 고쳐줄 순 없지만 잠시나마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작지만 기적 같은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꿈을 이루어 드림(DREAM)' 코너에서는 전국의 소아암·희귀질환 환자들의 사연이 소개됐다. 27주 미숙아로 태어난 6세 이해성 군(가명)은 단장증후군을 앓고 있다. 단장증후군이란 일반인보다 소장 길이가 25% 미만으로 짧아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질환을 가리킨다. 여기에 이군은 뇌병변과 자폐성 장애까지 동반돼 발달이 늦고 걸음도 불편한 상태다.
현재 이군은 '가정 정맥 영양 지원 시스템 구축 사업'에 참여해 치료를 받고 있다. 앞선 김군과 마찬가지로 다른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데이터도 제공하고 있다. 이군의 어머니는 "사업단을 통해 소망을 이루게 돼 기쁘다"며 "최근 아이가 다리 수술을 받았는데, 봄바람을 맞으며 함께 자전거 연습을 하고 있다. 아이의 재활을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이외에 의학 소설가를 꿈꾸는 뇌종양 환자, 히크먼 카테터(항암제를 주기적으로, 안전하게 투여하기 위해 신체 깊숙이 있는 굵은 정맥에 삽입하는 기구)를 삽입하기 전에 물놀이를 가는 것이 소원인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 환자 등의 사연도 소개됐다. 이들을 위한 응원과 격려의 시간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행사장 한편에는 캐리커처존, 요술풍선존, 포토존 등의 부대 행사가 마련됐다. 최은화 단장은 "고 이건희 회장의 귀중한 뜻에 따라 치료로 지쳐 있는 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은 소아암·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와 연구를 지원하는 10년짜리 프로젝트다. 해당 사업을 통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총 1만1822명의 환자가 진단을 받았고, 이 중 5512명의 치료를 받았다. 현재 등록된 코호트 데이터는 2만9379건으로 참여 중인 의료기관은 207곳, 의료진은 1529명이다.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은 수도권 외 지역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현재 전국 단위의 인프라스트럭처 확충, 지역 병원과의 협력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심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