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지금 국민은 정치-경제계에 무엇을 바라는가

8 hours ago 3

성장과 민주화 성취 뒤 흔들리는 국가비전
흑백 논리와 이기심의 정치가 갈등 부추겨
경제질서에 위기 안기는 집단이기주의까지
애국심으로 통합-책임의 리더십 회복해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나와 같은 세대는 대한민국 80년과 함께 지냈다. 12명의 대통령과 고락을 같이했다. 6·25 전란을 치르면서도 전반부 40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국가를 법치국가로 전환시키는 위업을 성취했다. 정치 지도자들의 실수도 있었으나, 나라를 지탱해 온 힘은 국민의 애국심과 주체의식이었다. 그러나 후반부 6대(代) 대통령의 기간에는 정신적 질서와 사회적 가치가 구현되는 선진국가로 가는 방향을 상실했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선후경중의 판단도 없었으며, 국가의 미래를 향한 비전도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질서국가에 역행하는 권력국가로 다시 전락할 위기를 만들어 왔다. 노무현 정부 동안에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 국민이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문재인 정권은 초창기부터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주도권을 차지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국민 분열의 비운을 초래했다. 국민은 미래 지향성도, 개혁의 과제도 갖추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야당의 잇따른 각료 탄핵 추진과 예산안 삭감 등 국가 운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계엄령 선포라는 파국에 이르렀다.

믿을 만한 지도자를 찾지 못한 국민은 이재명 대통령을 선출해 현재의 난국을 수습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 정부는 독주로 출범 때부터 국민의 기대를 꺾기 시작했다. 다만 야당의 무능으로 인해 국정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작금의 현실에 국민의 후진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제 정세와 북한과의 관계 등 무거운 과업이 가중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의 지적 한계와 이기적 판단이 정치 모순과 사회 갈등을 낳는 주요 이유다.

여당 대표의 언행을 접하거나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한 야당 지도부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의 실망감은 더욱 커진다. 우리 민족병이라고 볼 수 있는 흑백논리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성적 판단도 없고 미래 지향적인 가치관도 보이지 않는다. 감정적 갈등과 대립을 폭력으로 극복한다는 자세뿐이다. 상대방이 하는 모든 것은 흑(黑)을 대신하는 악으로 치부하면서, 같은 잘못을 범하는 우리는 백(白)을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현실의 사태에 대한 경중조차 가리지 못한다.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과 같은,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진 문제를 선거의 승리를 위해 떠들어대는 대통령과 여당의 행태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아 걱정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이득만을 추구하는 정당과 정치 지도자는 선진국가에 맞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경제의 중추를 맡고 있는 삼성전자의 노동조합이 날짜까지 정해 놓고 근로자들의 이권을 배당해 주지 않으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노조 대표자 중 한 사람은 “삼성전자를 없애 버리는 게 맞다”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노사가 합의해 반도체 생산라인이 중단되는 일은 일단 막았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한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발생한 배경과 우리의 경제관을 걱정하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도 예외는 아니지만 경제질서를 파괴하거나 위기를 안겨 주는 병폐의 뿌리가 있다. 이기적 발상과 집단이기주의가 그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공산정권이 확립될 때까지 파업을 불가결의 조건으로 여긴다. 일단 공산정권이 확립되면 파업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최악의 반정부 투쟁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민은 노조를 반대하지 않는다. 노조는 선의의 협력으로 모범적인 기업을 키우고, 그 기업은 사회에 기여하는 수준에 걸맞은 근로자 대우를 해야 한다. 근로자들의 행복은 기업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 국가는 기업에 정당한 비율의 세금을 매겨 국민과 사회 전체의 경제적 증진에 협조한다. 이는 당연한 사회적 흐름이다. 그 한 축으로서 노동운동은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의무이면서 권리다. 그러나 노조가 이기적 발상이나 이기적 집단으로 전락한다면 이는 일을 통한 사회·국가적 의무와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이념적 선악 관념보다 더 중대한 애국적 권리와 의무를 경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 보여주는 선택과 가벼운 언행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권리가 주어져 있으면 의무가 따른다. 경제 주체들이 흑백 가치의 습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발현하는 이기적 발상과 집단이기주의는 악 중의 악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들이 먼저 모든 국민이 나와 같이 선택하고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는 자세로 애국심을 되찾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네 편, 내 편으로 나누어 이용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국민들의 간절한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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