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무엇을 바꾸고 싶은 건가?”“헌법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최근 한 일본 신문 칼럼에서 소개한 박철희 전 주일대사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문답이다. 박 전 대사가 일본 기자클럽에서 일화를 공개했다고 한다. ‘불쌍한 일본국 헌법’이란 제목의 이 칼럼은 개정의 내용은 나중이고 국민에게 ‘개헌하는 감각’을 맛보게 하는 게 아베의 속내였다는 박 전 대사의 말을 빌려 아베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저 헌법을 건드리는 게 목적이었으니 8년이 넘는 장기 집권 동안 제대로 된 개헌 전략이 있었겠냐는 것이다.
아베의 후계자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어떨까. 다카이치는 지난 12일 자민당 당대회에서 “때는 왔다”며 개헌 추진을 선언했다. 내년 당대회 전 구체화라는 시한까지 제시했다. 일본인의 손으로 개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일본 헌법은 2차 대전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일본 측 초안을 퇴짜 놓고 건넨 안(맥아더 안)을 토대로 제정된 것이다. 사실상 미국이 만들어준 헌법이다.
다카이치가 6개월간 보여준 돌파력을 감안하면 개헌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큰 편이다. 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 개헌안 발의는 중의원의 경우 자민당 단독으로도 가능하다. 북한 중국 러시아의 위협이라는 안보 환경도 다카이치 편이다. 최근 국회 앞에서 수만 명이 “헌법 9조 수호”를 외쳤지만, 여론은 개헌 긍정 응답이 60%로 부정 응답(29%)의 두 배를 넘는다. ‘사나에 팬덤’의 18~39세는 긍정 응답이 72%나 됐다. 자민당과 연립 여당 일본유신회를 합해도 과반에 못 미치는 참의원이 관건이지만 못 넘을 벽은 아니다.
일본 보수는 개헌을 통해 무엇을 바꾸려는 걸까. 핵심은 ‘긴급사태 조항’ 신설과 ‘9조 2항’ 변경이다. 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건 9조 때문이다. 1항은 전쟁 영구 포기, 2항은 전력(戰力) 불보유 등을 담고 있다. 자민당은 자위대의 근거 규정 헌법 명기와 2항 유지, 유신회는 2항 삭제와 ‘국방군’ 보유 명기를 주장한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군대를 군대라 부르지 못하는 자위대를 호적(헌법)에 넣어주자는 게 자민당이고 아예 적자(嫡子)로 올리자는 게 유신회인 셈이다.
자위대는 엄연히 일본이 보유한 전력이지만 헌법이 그 존재를 부정하는 위헌적인 조직이다. 저출생과 인기 하락으로 매년 충원에 애를 먹는 인력난이 상시화된 조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니 ‘개헌=군국주의 부활’이라는 주변국 우려를 다수의 일본인은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개헌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이미 속도가 붙은 상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를 밑돌던 방위비는 내년 2% 수준으로 높아진다. 최근엔 살상무기 수출 금지까지 풀었다. 최대 명분은 안보 환경 변화다. 그런데 일본이 말하는 안보 불안은 곧 우리의 불안이기도 하다. “대만 유사(有事)는 일본의 존립 위기”라는 발언으로 중국의 공격 타깃이 된 다카이치다. 사실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하면 일본보다 더 위험한 건 한반도다. 과거사라는 숙제를 제대로 풀지 않은 채 ‘보통 국가’가 되겠다는 일본이 우려스럽긴 하지만, 당장 우리를 겨눈 북·중·러 밀착의 위협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과 일본은 좋든 싫든 순망치한의 관계다. 미국이 예전처럼 아낌없이 주는 동맹이 아니라서 더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의 두 차례 회동이 더 할 수 없이 좋았던 것도, 두 정상이 ‘실용’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도 위태로운 동북아 정세 때문이다. 일본이 개헌을 한다고 해도 1~2년 뒤다. 국회나 여론이 반대로 돌아서 어그러질 가능성도 있다. 우선은 그들이 79년 만의 첫 개헌을 어떻게 진행하고 논의해 나가는지를 찬찬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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