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나는 나의 서재에서 아홉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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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나는 나의 서재에서 아홉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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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책만 읽었던 조선시대의 소문난 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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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범람하는 시대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하물며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한 권의 책이 갖는 정신적인 무게감은 지금보다 컸을 것이다. 그런 조선시대에도 애서가는 있었다. 이덕무란 사람이다.

권정원 선생이 이덕무의 글을 모아 엮은 '책에 미친 바보'는 자신을 책에 미친 바보, 즉 간서치(看書癡)로 표현했던 이덕무의 삶과 글을 조명하는 책이다. 조선시대의 작은 방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1761년 이덕무의 방은 동쪽, 남쪽, 서쪽으로 모두 햇빛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동쪽에서 해가 떠나 남쪽에서 비치다 서쪽으로 질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이덕무는 21세의 나이에 쓴 한 글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목멱산 아래 어리석은 사람 하나가 살았다.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옛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그의 방은 작았으나 동서남 삼면에 창이 있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 가며 책을 읽었다."

그가 책을 보는 방식은 그저 주요 내용만 추려 읽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덕무는 자신의 서재를 구서재(九書齋)라 명명했는데, '아홉 가지 일을 하는 서재'란 뜻이었다.

책에 따르면,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독서는 이런 것이다.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는 독서, 눈으로 읽는 간서, 책을 소장하는 장서, 중요한 부분을 베껴 가며 손으로 읽는 초서, 교정하며 읽는 교서, 책을 읽고 감상과 평을 남기는 평서, 책을 저술하는 저서, 빌려 읽는 차서, 또 책을 햇볕에 쬐어 말리는 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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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이덕무가 읽은 책은 2만권 정도. 하지만 그는 독자로서의 정체성만 갖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글을 통해 후대의 '독서 후배들'에게 회자된다. 그는 '짧고 감성적인 산문'을 뜻하는 소품문에 능했다. 조선에서 저술된 책과 베이징에서 수입된 책을 읽고 그는 스스로 붓을 들었다.

저자는 이덕무의 글을 인용하며 그를 이렇게 표현한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밀려와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하기만 할 때에는 그저 땅을 뚫고 들어가고 싶을 뿐,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두 눈이 있고 글자를 알기에 한 권의 책을 들고 마음을 위로하면 잠시 뒤에는 억눌리고 무너졌던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책은, 그리고 책을 읽는 방은, 때로 독자에게 우주를 펼쳐 보여준다. 책은 각 권이 한 권짜리 우주이기도 하고, 책을 펼쳐 그 안에 진입하면 세상이 확장된다.

빈자든 부자든 책이 열어주는 세계는 공평하다. 이때 책은 그저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사물만이 아니다. 책은 한 인간을 견디게 한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한다는 건 그러므로 내 안에 하나의 세계를 더 열어주는 일이다. 한 권의 우주를 제대로 열 때마다 우리는 몇 겹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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