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윤석열-김건희의 진솔한 사죄를 듣고 싶다

13 hours ago 4

지난해 9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실에서 한가위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대통령실제공

지난해 9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실에서 한가위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대통령실제공

1년 전 추석 때 그들은 지존이었다. 올해보다 20일쯤 앞섰던 그 무렵, 윤석열-김건희 당시 대통령 부부는 각계 인사들에게 한가위 선물을 돌리고 빛깔 고운 한복차림으로 국민 앞에 한가위 인사를 올렸다. 그때만 해도 1년 뒤 구치소 창살 밖으로 달을 보며 ‘서바이벌’하기조차 힘든 처지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다수 국민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법대 나온 검찰총장 출신 허우대 멀쩡한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도 아닌데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대통령 부인(이하 경칭 생략)의 녹취가 대선 전 공개되긴 했지만 설마 V0 노릇까지 하리라고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그들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가위 선물이라도 좋다. 풍요로워야 할 한가위, 이제라도 그들의 진솔한 사과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 불안과 불편을 끼쳤다고 사과했을 뿐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한때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에게 가장 실망스러운 건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2·3 비상계엄 4일 뒤 담화에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히긴 했다. 그러나 그 사과는 비상계엄 자체의 잘못을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윤석열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렸다.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즉 국민들께 불안과 불편을 끼쳤고 놀라게 해서 사과한 것이지, 불법 계엄에 대한 사과는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저는 이번 계엄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그 뒤 보여준 윤석열의 모습은 법적, 정치적 책임을 요리조리 피하려는 법꾸라지 작태다.● 비상상황에 따른 비상계엄이었다고?

지난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구속기소된 김건희 여사가 법정에 출석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구속기소된 김건희 여사가 법정에 출석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9월 26일 내란특검이 추가 기소한 사건 첫 재판에서 윤석열 측은 국무회의 계엄 심의·의결권 침해 등 5가지 혐의를 모조리 부인했다. 기존 내란 혐의 재판(부장판사 지귀연) 혐의도 부인한 건 물론이다. 변호인단은 “대통령으로서 비상상황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후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에 따라 비상계엄을 해제했다”며 특검의 내란 기소가 터무니없다는 식이었다.

그 남편에 그 아내 아니랄까봐 김건희 측도 9월 25일 첫 공판에서 모든 혐의를 몽땅 부인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혐의는 특검의 침소봉대이고, 공천 개입 사실은 더더욱 없으며 명품 목걸이나 가방 물건 받은 사실도 전혀 없다니 전 국민이 바보 된 느낌이다. 김건희 특검에선 통일교 정경유착에 매관매직, 마약거래 의혹까지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이 터져 나온다. 인사-공천-국정 개입은 차라리 가벼워 보일 정도다.

윤석열이 머리는 짧게 치고 살까지 빠져 법정 출석한 것을 보면 잠깐 짠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석 심문에서 “1.8평 (구치소) 독방 안에서 ‘서바이벌’ 하는 자체가 힘들었다”고 앞 뒤 못 가리는 말이나 하는 걸 보면, 저런 ‘그릇’으로 어떻게 대통령 노릇을 했는지 공분을 금치 못하겠다. 오죽하면 김건희가 V0로 나섰을까 싶을 정도다. 김건희의 국정개입을 막기는커녕 김건희 국정개입을 우려하는 모든 사람을 악마화 했던 사람이 바로 윤석열이었다.

● 헌재가 밝힌 대통령 파면 이유를 다시 보면

올해 4월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문형배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헌재의 결정을 선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올해 4월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문형배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헌재의 결정을 선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여기서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잘못인 이유를 나열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윤석열은 제발, 눈이 아프면 판결문 요지라도 읽어보기 바란다.

“피청구인(대통령 윤석열)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헌재는 인정했다. “취임한 때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국회의원선거에서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미어진다(2024년 총선 다음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유례없는 與참패…국민은 尹대통령을 매섭게 질책했다’였다). 윤석열은 국민 앞에 국정 난맥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팽개치고 친위쿠데타나 일으킨 윤석열의 파면 이유를 헌재는 이렇게 적시했다.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습니다.”

● 윤석열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하는 이유

지난달 재판에 출석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재판에 출석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은 자신을 반(反)국가세력의 희생양이나 양심범으로 믿는지 모른다. 설마 유신헌법을 외우고 있는지, 알콜성 인지장애인지,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치명적 애처증 때문인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결론은 이미 헌재에서 내려져 있다. 다수 국민의 정신건강과 행복한 추석을 위해 윤석열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이유가 있다.

첫째, 대통령도(그리고 부인도) 법치주의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잊었기 때문이다. 후임 대통령이 선출권력 우위론을 들어 출범 넉 달도 안 돼 법치주의를,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 윤석열이 충성을 바쳤던 검찰은 해체될 운명이다. 누구도 법치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당신의 사죄로 입증하기 바란다.

둘째, 개인의 자유와 선택, 책임을 중시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보수우파가 마음 둘 곳을 못 찾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김문수가 받은 41%가 여기서 나온 표였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국힘 ‘윤 어게인’만의 표가 아니란 말이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국힘에도 “나를 버리고 넘어가라”고 밝히기 바란다. ‘멀쩡한 보수’가 윤석열과 국힘 때문에 괴멸 위기에 빠져 있다.

● 친위 쿠데타 사죄, 한가위 선물 될 것

지난해 12월 4일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고 있는 모습.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지난해 12월 4일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고 있는 모습.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셋째, 평생 특혜받고 살아온 엘리트로서 나라와 국민에 못할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윤석열로 인해 공부 잘해 서울대 법대 나오면 뭐하나, 김건희로 인해 (성형으로) 얼굴 가꿔 시집 잘가면 뭐하나, 국민들 사이엔 냉소가 번지고 있다. 법사, 주술사, 검찰, 동창까지 동원해 뇌물에 매관매직까지 하고도 친위 쿠데타라니…대한민국을 구한말로 후진시킨 부부가 윤-김이다. 그렇게 긁어 모은 부와 권력으로 당신들은 정녕 행복하였는가. 뻔뻔한 엘리트의 민낯이 드러난 통에 퍼주기 포퓰리즘 정책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주한미군 철수까지 우려해야 할 판이다.

그나마 하느님이 보우하사 사필귀정( 事必歸正)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우리에겐 큰 희망이다. 지금은 하늘을 쓰고 도리질이지만 이재명 정부에도 해당되는 건 물론이다.

곧 한가위 보름달이 뜬다. 윤-김 부부는 친위 쿠데타 그 자체를 포함해 진솔한 사죄를 하기 바란다. 모처럼 괜찮은 한가위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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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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