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사결정은 선택에 따른 기대 이익과 비용을 반영한다. 누구나 기대 이익이 실패 손실을 포함한 비용보다 큰 선택을 하려고 한다. 경제학 교과서의 기회비용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포기한 대안 중 편익이 가장 큰 값이 기회비용이다. 판단하기 어렵더라도 선택지 가운데 편익이 큰 것을 고르려는 게 인지상정이다. 정치인도 그렇고 기업 경영자나 투자자의 의사결정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당장의 선거가 중요한 정치인과 미래를 봐야 하는 기업인은 곧잘 상반된 결정을 내린다. 편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둑기사 이세돌은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해가 안 된다. 왜 대기업들은 여유가 있는데도 (떠나는 이공계 인재를 잡으려는) 투자를 안 할까? 제 결론은 ‘절박함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좁은 한국 시장만 장악해도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어차피 ‘새로운 도전을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인재에 대한 대우가 박하고 인재 유출을 방관한다고도 했다. 10년 전 알파고와 대결하며 인공지능(AI)의 힘을 먼저 경험한 그가 우리 사회의 느린 변화 대응과 현실 안주를 언급하며 꺼낸 얘기다.
인터뷰가 마뜩잖은 기업인도 있을 것이다. ‘좁은 한국 시장만 장악해도 먹고살 수 있다’라거나 ‘절박함이 없다’ ‘새로운 도전을 안 한다’는 대목이 불편할 수 있다. 기업 의사결정은 기대 이익과 기회비용뿐만 아니라 실패 비용까지 복잡하게 고려해 이뤄진다는 반박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된 논지는 다른 데 있다.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서 도전한 이병철,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업조차 안주하면서 느려졌다고 지적한다. 지금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한화 HD현대 등이 글로벌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것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최근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통한 경영 투명성 확보와 주주환원 확대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두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됐고,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됐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대상도 2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모두 대주주 경영권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기업에 배당 등 주주환원을 확대하라는 압력도 거세다. 저평가된 증시 체질을 바꿔 코스피지수 5000 시대를 열기 위해 총수의 경영 독단을 막아야 한다는 개인투자자의 요구에 여당은 빠른 입법으로 반응했다. 주주환원을 늘리면 이득을 보는 투자자와 그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여당의 기대 이익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주주의 기대 이익 판단과 의사결정은 매번 일반투자자와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투자자 다수가 주주환원 확대를 최우선으로 하더라도 필요하면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주주는 회사의 영속성과 미래 성장성에 더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대주주는 기업이 잘못되면 유한책임을 질 뿐인 소액주주와 달리 사실상 무한책임을 지는 이유다.
한국 증시의 낮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취약한 지배구조와 미흡한 주주환원 탓이라는 주장이 퍼져 있다. 일부 개선해야 할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지적처럼 그보다는 대기업 성장동력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기업으로선 앞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반투자자 견제를 더 많이 받게 됐다. 주주환원 규모를 줄인 재원으로 불확실한 미래 투자에 나서는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시대에 도전 의식으로 똘똘 뭉친 기업인은 더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