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때릴수록 우리는 웃는다…'10조 대박' 터진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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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있는 한 빌딩에 법무법인 간판이 빼곡히 걸려 있다.  임민규 기자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있는 한 빌딩에 법무법인 간판이 빼곡히 걸려 있다. 임민규 기자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 규모가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다. 기업 규제 강화로 법률 자문 수요가 급증한 데다 대형 로펌이 경영·세무·노동 컨설팅 영역까지 흡수하며 시장 파이를 키운 결과다.

8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5년 변호사 직종 매출(부가가치세 신고 기준)은 10조3749억원으로, 2022년 8조원 고지를 넘은 지 3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웃돌았다. 전년보다는 8.1% 늘었고, 2015년(4조6373억원)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2015~2025년 연평균 증가율은 8.4%로,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4.3%)의 두 배 수준이다.

법조계에서는 기업 규제 강화가 대형 로펌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공지능(AI), 공정거래, 중대재해 등 규제 대응은 물론 국정감사와 국회 입법 과정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정책 자문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 등 새로운 유형의 기업 사건도 로펌의 수입원이 되고 있다. 고액 자산가와 기업 오너의 가사·상속, 승계 및 재산 분할 자문 수요가 늘어난 것도 시장이 커진 요인이다. 오종한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대형 로펌이 ‘규제 특수’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규제가 키운 로펌…컨설팅·로비 영역까지 장악했다

행정·입법 컨설팅펌으로 진화하는 로펌
중대재해 도입 후 매출 10% 증가…AI·공정거래 정책대응 수요 늘어

“규제를 행정심판·소송으로 해결하는 전통 방식은 정부기관과 충돌해야 하고 상당한 기간·비용이 소요됩니다. 법제컨설팅은 법령의 제·개정, 올바른 유권해석의 확보 등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합니다.”(법무법인 광장 홈페이지)

대형 로펌이 기존 송무를 넘어 법제·경영·세무·노동 컨설팅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기업 규제 강화에 힘입어 연매출 10조원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 규제 강화가 부른 ‘로펌 특수’

8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변호사 직종 매출(부가가치세 신고 기준)은 2015년 4조6373억원에서 2025년 10조3749억원으로 10년 새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이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률시장 비중도 0.26%에서 0.39%로 높아졌다.

이 같은 성장세의 배경에는 대형 로펌의 ‘컨설팅펌화’가 있다. 한 대형 로펌의 건설부문은 최근 민간 시행사에 수익성이 높을 만한 개발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했다. 과거엔 건설회사가 연루된 소송이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법률자문 등이 로펌의 주된 역할이었는데, 이제는 부동산 컨설팅사가 할 법한 사업 아이템 제시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로펌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제로’(0)에 가깝던 프로젝트 기획과 건설현장 안전 관리, 부동산 자산관리 등 컨설팅 업무의 매출 비중이 현재 15%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요즘 로펌은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가게 된 기업인 등을 대상으로 발언 및 자세, 표정 등을 ‘코칭’도 해준다. 또 로펌 대관팀은 국회의원을 설득할 논리를 제공해 기업 활동에 필요한 법안 발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입법 로비’로도 불리는 법제컨설팅 수요 역시 늘고 있다. 국내 입법 로비 시장은 2017년 이후 크게 성장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대기업들이 직접 정치권과 상대하는 것을 꺼리면서 법무법인에 의존하게 됐다.

지난달 출범한 지평의 ‘인공지능(AI) 인프라 센터’는 지역 민원 대응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내 방위산업 업체들이 로펌의 문을 두드리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미국 전쟁부(국방부) 납품에 필수적인 CMMC(사이버보안 성숙도 모델 인증) 컨설팅을 받기 위해서다. 로펌들은 관료와 국회, 기업 출신 등 다양한 분야의 비법조인 전문가를 경쟁적으로 영입하며 컨설팅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 개인정보 사건도 급증

갈수록 정부 규제가 촘촘해지는 것도 로펌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2020~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규제와 맞물려 법률시장 매출 증가율은 10% 안팎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검·경 수사기관 외에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행정기관의 조사·제재가 잇따르면서 규제 자문 수요가 폭발했다. 지난해에는 SK텔레콤과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터지면서 개인정보 사건 대응 수요도 급증했다. 오종한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과거에는 경기가 좋아야 로펌 실적이 늘었는데, 최근에는 정부 정책과 규제 강화가 로펌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적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김앤장법률사무소(1조6000억원 추정)가 독보적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태평양이 매출 4402억원을 올리며 6년 만에 2위를 탈환했다. 세종(4363억원)은 19년 만에 3위로 올라섰고, 광장(4309억원)과 율촌(4080억원)도 나란히 4000억원을 넘겼다. 화우(2812억원)는 40.4%의 매출 급증세를 보였다. 10대 로펌 합산 매출은 4조1090억원으로 전체 법률시장의 약 40%를 차지한다.

다만 법률시장도 AI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강석훈 율촌 대표변호사는 “대형 로펌은 이미 효율 경쟁 단계에 진입했다”며 “리걸테크 도입과 고부가가치 업무 집중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장기 실적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란/김유진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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