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미학이 만나 예술이 된 오디오…MoMA가 소장한 모델은?

2 weeks ago 4

굿 디자인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디자인보다는 엔지니어링이 더 부각된 면이 많았다. 기술적인 진보와 새로운 인터페이스 등에 가려 디자인에 관해선 조명이 덜 되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하이파이 분야에서도 디자인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디자인은 종종 그 성능만큼이나 중요하며 어떤 사람에게 오디오는 가구나 오브제와 동일시되기도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야를 넓혀보면 하이파이 오디오 역사에서도 여러 선구자가 있었다. 예를 들어 독일 출신 산업 디자이너로서 브라운이라는 브랜드를 일약 최고의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킨 디터 람스가 대표적이다.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팟 등을 디자인할 때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참고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수석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가 직접 폭로(?)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오디오의 음질과 기능, 퍼포먼스는 오디오의 존재 가치다. 그러나 갈수록 디자인이 중요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때로 디자인은 그 모든 것을 압도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해졌다. 필자가 생각하는 ‘Good Design’을 몇 개 추천해본다.

쿼드 33 & 303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쿼드는 영국 하면 떠오르는 탄노이나 네임오디오와 함께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피터 워커는 쿼드를 창립한 후 정전형 스피커 ESL 시리즈부터 진공관 앰프를 비롯해 트랜지스터 앰프의 초창기를 열어젖힌 인물이다. 그리고 쿼드 33 프리앰프와 303 파워앰프는 1960년대 후반 트랜지스터 앰프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의 설계 디자인을 정립한 모델이다. 컴팩트한 디자인에 더해 주황색 버튼은 성능뿐만 아니라 디자인으로서도 당시 파격적이었다. 당시 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될 정도였는데 최근에 쿼드에서 이 모델을 리이슈 하기도 해 이목을 모으고 있다.

Quad 33pre 303power

Quad 33pre 303power

케프 LSX II

영국 출신으로 현재 홍콩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마이클 영은 디자이너 사이에선 꽤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디자인 영역은 방대하다. 자동차, 자전거 및 온갖 생활용품 등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해 가구 및 생활 소품, 조명 등 우리 일상의 곳곳을 둘러싸고 있는 제품들을 디자인해 호평받고 있다. 그가 디자인한 LSX는 아름답게 이어지는 곡선과 예쁘기까지 한 심플함과 절제미가 돋보인다. 덴마크의 크바드라트 패브릭 마감으로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몇 년 전엔 KEF 테렌스 콘란 경과 협업해 LSX 사운드웨이브 에디션을 출시해 국내 콘란샵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케프 LSX II

케프 LSX II

뱅앤올룹슨 Beosound A9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뱅앤올룹슨(B&O)의 황금기를 아름답고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수놓은 야콥 옌센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당시 필립스가 세탁기를 만든다면 일반적으로는 세탁기를 일단 설계한 후 그에 맞도록 디자이너에서 디자인을 의뢰했다. 하지만 뱅앤올룹슨은 예를 들어 라디오를 만들 경우 라디오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냐고 디자이너에게 물었고 그에 따라 설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혁신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았다. Beolit, Beogram, Beovision 시리즈로 대표되는 이 당시 디자인은 오디오를 뛰어넘어 제품 디자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Beoplay A9과 현역 모델 Beosound A9는 ‘가구로서의 오디오’라는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작이다.

B&O Beosound A9

B&O Beosound A9

린 LP12-50

요즘 하이엔드 턴테이블이라고 하면 우람한 몸체에 금속 소재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전적인 형태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는 브랜드도 있다. 영국의 레가 그리고 린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보면 그 옛날 BBC 방송국에서 설계한 LS 3/5A 같은 모니터 북셀프가 여전히 비슷한 디자인으로 출시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흥미로운 건 2022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디자인의 LP12이다. 린의 대표와 조너선 아이브가 만나 50주년 기념 LP12를 만든 것이다. 전직 애플 수석 디자이너가 사랑하는 턴테이블은 이렇게 50주년 기념 LP12를 디자인했다. 너도밤나무 소재 베이스에 아이폰, 아이패드의 그 아름다운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곡선미는 LP12에 또 다른 서사를 부여했다.

린의 대표 × 조너선 아이브, 5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LP12

린의 대표 × 조너선 아이브, 5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LP12

나그라 Tube DAC

오디오 부문에서 스위스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명품 브랜드의 산실인 곳이어서 최고 등급의 가공 퀄리티를 보이며 값비싼 만큼 성능, 소리에서 미국의 그것과 대척점에 있다. 디자인 또한 누구나 소유욕을 일으킬 만큼 독창적이며 아름답다. 그 중 나그라는 가장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디자인엔 이유가 있다. 스테판 쿠델스키가 설립한 나그라는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작고 정밀한 휴대용 녹음기 제작사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론칭한 나그라 하이엔드 오디오는 나그라 녹음기들의 디자인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면서 특유의 노브, 다이얼, 모듈 미터를 차용했다. 나그라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당시 뮤지션의 음악을 녹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직접 조작하는 손맛도 일품이다.

Nagra Tube DAC

Nagra Tube DAC

오디오 평론가 코난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