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간의 희소성과 한국 증시의 선진화

2 days ago 8

[기고] 시간의 희소성과 한국 증시의 선진화

여러 자원 가운데 가장 희소한 것은 시간이다. 지나가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역 간 시차가 제약 요건으로 작용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24시간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실제 세계 주요 자본시장도 ‘시간의 경쟁’에 들어섰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은 23시간 거래 체계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부 대체거래소(ATS)는 이미 야간 거래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과 홍콩 등 주요 금융시장 역시 거래시간 확대를 검토 중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이 사실상 24시간 시장으로 진화하면서 한국 주식시장 역시 거래시간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한국거래소(KRX)의 정규 매매거래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다. 장 종료 후 시간외시장을 포함하더라도 전체 거래 가능 시간은 약 8시간30분에 머문다. 반면 미국은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을 포함해 약 16시간 거래가 가능하다.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선 불편이 적지 않다. 다행히 국내 시장 내부에서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최근 등장한 대체거래플랫폼 넥스트레이드(NXT)는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12시간 거래 서비스를 제공해 ‘출퇴근 매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현재와 같은 복수시장 체제에서는 어느 하나의 시장이 더 긴 거래시간을 제공하면 투자자의 주문과 유동성이 해당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거래시간 확대의 필요성은 투자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빠르게 늘고 있다. 외화주식 보관금액은 2011년 약 36억달러에서 2025년 약 1700억달러로 폭증했다. 해외주식 투자 가운데 약 90%가 미국 주식에 집중돼 있다. 투자자들이 더 긴 거래시간과 높은 유동성을 제공하는 시장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투자자의 관점에서도 한국 시장의 접근성은 낮은 편이다. 글로벌 투자자는 각국 시장의 거래시간과 시차를 고려해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데, 굳이 거래시간이 제한적인 시장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사실 거래소 입장에서 더 심각한 변화는 가상자산 시장과 증권의 토큰화(tokenization)다. 가상자산 시장은 이미 24시간 거래 구조를 갖추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 증권이 블록체인 기반 토큰 형태로 발행되고 유통된다면 경쟁 환경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토큰화된 증권은 기술적으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거래가 가능한데, 이런 시장이 본격화하면 거래시간이 제한된 전통적인 거래소의 경쟁력은 빠른 속도로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거래소는 공적 시장 인프라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거래소의 주요 수입원은 매매거래 수수료와 시장 운영 관련 서비스 대가다. 거래가 줄고 유동성이 다른 거래소로 이동하면 한국거래소의 수익 기반 역시 약화된다. 거래시간 문제는 단순한 운영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거래소의 경쟁력과 직결된 과제인 셈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그동안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거래시간을 꾸준히 조정해 왔다. 이제는 글로벌 자본시장과 국내 복수시장 경쟁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거래시간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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