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1년 선배’ 장진 감독 연극
‘꽃의 비밀’서 막내 지나역 열연
“마음 놓고 관객 웃기는 쇼타임”
10주년을 맞은 장진 감독의 연극 ‘꽃의 비밀’에서 막내 지나는 이렇게 외치며 무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보험금을 타 내려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하는 네 여자의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극이다. 연장자인 소피아가 극을 이끌고 자스민이 ‘감초’이며 모니카가 ‘미녀’라면, 지나는 겁 많은 소녀 같지만 대범한 범행을 저지르는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지나 역으로 무대에 오른 배우 김슬기를 19일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김슬기는 서울예대 재학 중 무려 ‘21년 선배’인 장 감독이 동아리 30주년 기념으로 만든 연극에서 주연을 맡은 것을 계기로 2013년 tvN ‘SNL 코리아’에 출연해 대중에게 존재를 각인시켰다. 귀여운 얼굴에 밉지 않은 욕설 연기로 ‘국민 욕동생’이란 별명까지 붙은 ‘SNL 원년 크루’. 이 무렵 장 감독은 ‘꽃의 비밀’ 각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 지나는 김슬기를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이번 무대는 장 감독이 보았던 배우 김슬기의 매력을 오롯이 발휘하는 자리인 셈이다.
연극이 끝난 뒤 무대 아래에서 만난 김슬기는 앉자마자 “중요한 대사를 틀렸다”며 “티가 많이 났느냐”며 걱정부터 했다. 무대나 스크린에선 유쾌한 이미지지만, 평소엔 소심하고 웅크리는 성격이라 에너지를 많이 쓴다고도 털어놨다.“극 초반에 소피아와 자스민, 모니카가 웃고 떠들 때 지나는 혼자 불안해하고 겁을 먹기도 해요. 또 자기가 저지른 일을 뒤늦게 자각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복잡한 캐릭터죠.”
그런 지나가 에너지를 터뜨리는 순간은 극 후반부 남장 연기를 시작할 때다. 김슬기는 이때가 “마음 놓고 웃길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남장 이후로는 모든 캐릭터가 몰입하는 ‘쇼 타임’이죠. 우선 남장한 모습만 봐도 너무 웃기잖아요. 배우들도 ‘웃음 면역력’을 키우려 1∼2주 전부터 연습실에서 가발 쓰고 분장을 한 채로 연습해요. 특히 자스민의 얼굴을 미리 많이 봐둬요.” 극에서 지나는 범행을 들킬 수도 있단 절망감에 ‘엎드려뻗쳐’를 하거나, 남자인 척 능글맞은 미소를 짓기도 한다. 김슬기는 “배우가 깔깔 웃는다고 코미디극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당황, 긴장, 슬픔 등 웃음 외의 감정을 보여줘야 관객을 웃길 수 있는 게 희극의 특징”이라고 했다.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은 욕망은 있었지만, 중학생 때 “자신이 재밌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는 김슬기. 그때부터 “잘 짜인 대본을 충실히 연기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는 그는 작품에서 애드리브를 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실제로도 주어진 역할을 야무지게 해내려는 다부진 분위기가 더 짙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번 ‘꽃의 비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직전 공연에서 제가 남장으로 등장하니 누군가 크게 ‘귀여워!’라고 외쳤어요. 감사했습니다!” 5월 1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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