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0개사 신용도 하락, 40곳 상승
석유-유통 등 실적 악화에 대거 강등
글로벌 신평사 ‘정치 불확실성’ 주시
“국가 신인도 하락땐 기업 연쇄타격”
주력 산업 부진과 내수 침체라는 ‘이중고’를 맞이한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세가 2년째 지속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탄핵 정국 장기화 등의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올해도 기업 신용도 하향 기조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 속에 국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23일 본보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등 3곳의 신용평가사(신평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총 70개 기업의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신용등급이 상승한 기업은 40개였다. 신용등급은 정부, 공공기관, 민간 기업 등의 채무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하기 전에 최소 두 곳의 신평사에 등급 산정을 의뢰한다. 국내에서 신용등급을 받은 공·사기업은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한국전력 등 500여 곳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영향권이었던 2021∼2022년에는 주요 국가들의 부양 정책에 힘입어 대부분 업종의 실적이 개선되고 신용등급도 상승했다. 2022년의 경우 신용도가 상향된 기업이 78곳으로 하향 조정된 곳(57곳)보다 많았다. 하지만 고금리·고물가 국면, 산업 경쟁력 약화 등으로 기업 신용도는 2023년부터 하향 기조에 진입했다. 2023년에도 신용도가 하락한 기업(69개)이 상승한 곳(49개)보다 많았다.효성화학, 여천NCC 등 전 세계적으로 공급 과잉이 심해진 석유·화학 업종의 신용도 하락이 두드러졌다. 소비 위축, 온라인 유통 채널 변화 등으로 실적이 악화된 롯데, 이마트 등 유통 대기업 계열사들도 신용등급이 대거 하향 조정됐다.
기업의 신용도 하락이 장기화될 경우 ‘악순환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신용등급 하향으로 회사채 금리가 오르는 등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 부담이 증가하면, 이것이 신용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신평사들은 내수 부진, 통상 여건 악화, 금융시장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올해도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내리막길을 걸을 가능성을 높게 본다.
문제는 계엄 및 탄핵 정국으로 국가 신용도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글로벌 신평사들은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게 되면 기업들도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된다. 신평사 고위 관계자는 “국가 신용도가 떨어질 경우 기업들의 신용등급도 덩달아 하향 조정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글로벌 신평사들을 잇달아 만나며 소통하는 것도 ‘국가 신용도 하락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한국처럼 기축통화를 보유하지 않은 곳은 (국가 신용등급) 하락 여파가 더 크기 때문에 최대한 등급을 방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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