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스마트팜 실증, 인공지능(AI) 작황 예측,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 '데이터 농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농식품 분야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해 과학적 정책 결정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최근에는 민간 데이터를 연계한 '농식품 빅데이터 거래소'도 출범했다.
데이터 축적 자체는 중요한 기반이다. 특히 고품질 선도 농가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은 스마트농업 확산의 핵심이다. 그러나 데이터가 실제 정책 설계나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현재는 수집과 저장 중심의 구조에 머물러 있고, 농가의 민감한 데이터를 어떻게 정당하게 확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설계는 부족해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1100여 종의 공공데이터를 개방하고 이를 활용한 창업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이 데이터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데이터 흐름이 일방향이라는 점은 치명적이다. 현재 구조는 위에서 수집하고 분석해 내려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농민의 피드백, 유통 현장의 흐름, 지역 단위의 계절적 변수 같은 '아래로부터의 데이터'는 여전히 체계화되지 않았다. 스마트농업 기술 도입 농가 중 상당수는 데이터를 자가로 수집·분석하면서도 정책과 연결되기보다 개별 사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데이터 농정은 기술보다 구조에 달렸다. 누가 데이터를 만들고, 누가 활용하며, 누가 결정하는지를 재설계하지 않으면 '디지털 농정'은 장비만 남긴 채 방향을 잃게 된다.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데이터를 가지고 '어떻게 판단하고 실행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