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주 주지사 등과 나란히 서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과정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취임식 이후 꾸준히 현대차그룹의 투자계획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지난달 11일 보도 참고자료에 해당하는 ‘팩트시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으로 미국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이 강화될 것”이라며 “최근 현대제철이 미국에 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고 했다. 지난 10일에는 “기업들이 잠재적인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시장으로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글로벌 대기업 12곳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현대차그룹을 포함했다.
현대차그룹은 투자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기회를 찾고 있었지만, 시기와 형식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백악관 측에서 갑작스레 먼저 현대차그룹에 연락해 발표를 준비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 과정은 길지 않았다. 짧은 기간 내에 긴급하게 미국 방문 계획을 세우고 발표를 준비하느라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은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전날 백악관이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일정표에는 ‘루이지애나 주지사와 발표’라고만 간단히 언급됐다. 미국 측 참가자 명단도 막판까지 계속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 발표에는 정 회장을 비롯해 현대차그룹에서 총 4명이 배석했다.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 성김 현대차 사장,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이 자리에 함께 했다. 특히 지난해 현대차가 영입한 전 미국 대북특보,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 출신 성김 사장은 트럼프 정부 출범을 전후해 여러 차례 워싱턴DC와 서울을 오가면서 현대차그룹의 입장을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관 출신인 김일범 현대차 부사장도 성김 사장을 보좌해 막후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발표 예정시각은 2시였지만, 앞서 트럼프 정부 각료회의가 길어지면서 존슨 의장과 랜드리 주지사 등은 예정보다 15분 늦게 루즈벨트룸에 들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보다 좀 더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현대차그룹의 투자를 소개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현대제철이 신규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는 루이지애나주 정치인인 존슨 의장과 스컬리스 원내대표가 자리에 함께 하면서 현 공화당의 최고 실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광경이 연출됐다. 존슨 하원의장은 “미국이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모두 느끼고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어메리카 퍼스트’이며, 현대라는 훌륭한 친구가 루이지애나에 투자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조지아·앨라배마주에 집중된 투자지역을 루이지애나로 다변화한 현대차그룹의 전략적 선택이 빛난 대목이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