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에서 여당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제정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거대 플랫폼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잡힐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 삶을 바꾸겠다"며 연일 장밋빛 청사진도 쏟아지고 있다. 다만 정작 그 청사진을 그릴 붓을 누가 쥘지를 두고 과거처럼 '밥그릇 싸움'이 다시 재연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입점업체에 대한 갑질을 근절하고, 불투명한 알고리즘 장막을 걷으며, 독과점의 폐해를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분명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측면이 있다. 플랫폼 경제의 공정성을 향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거 정부 기관 간 벌어졌던 영역 다툼이 재연될 조짐이다. 한 침대에 누웠지만,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는 형국이다. 법안의 취지와 명분이라는 무대 뒤편에서는, 법 집행 권한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플랫폼 시장에 공정한 질서를 세우겠다는 대의명분이, 두 기관의 해묵은 관할권 다툼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이들의 다툼은 플랫폼 경제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산물일까, 아니면 비효율과 혼란을 낳는 관료주의의 단면일 뿐일까.
온플법, 시장이냐 미디어냐
두 기관의 '동상이몽'은 각자의 탄생 배경과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모든 플랫폼 문제는 각자의 전문 분야로 통한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인 셈이다. 공정위는 온플법의 핵심이 거래 공정화와 경쟁 촉진에 있다고 주장한다. 플랫폼의 거래상 지위 남용, 자사 우대, 경쟁 제한 행위 등은 전통적인 공정거래법의 규율 대상이므로, 시장 경쟁 질서 유지를 사명으로 하는 공정위가 규제의 적임자라는 것이다. 공정위 시각에서 온플법은 시장경제 기본원칙을 온라인 환경에 확장 적용한 '공정거래법의 특별법' 같은 존재다.
반면 방통위는 플랫폼을 단순한 시장이나 거래의 장이 아닌, 여론을 형성하고 정보를 매개하는 미디어이자 부가통신서비스로 본다. 따라서 이용자 보호, 표현의 자유, 서비스의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 등 미디어 및 통신 규제 전문성을 가진 자신들이 플랫폼을 관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령 배달앱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를 공정위는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보고, 방통위는 통신망을 이용한 부가통신서비스의 이용자 차별 문제로 접근하여 전기통신사업법의 잣대를 들이댄다. 동일한 플랫폼을 두고 한쪽은 '시장'으로 다른 한쪽은 '미디어'로 간주하니, 이들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부처 대립이 '규제 위 규제' 낳아
문제는 이러한 부처 간의 갈등이 단순히 힘겨루기를 넘어 '옥상옥(屋上屋)' 규제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공정거래법이라는 강력한 시장 규제법이 존재한다. 온플법이 규율하려는 △불공정한 계약 조항 △부당한 비용 전가 △불이익 제공 행위 등은 상당 부분 현행 공정거래법의 '거래상 지위 남용 금지' 조항으로 포섭이 가능하다. 만약 온플법이 기존 법과 유사한 내용으로 제정되고 두 기관이 각자의 법률에 따라 집행에 나선다면, 기업들은 사실상 동일한 행위에 대해 이중으로 조사받고 처벌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한 플랫폼 기업이 이용자 편의를 위해 새로운 알고리즘을 도입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한쪽에서는 '혁신'이라며 상을 주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장 교란'이라며 칼을 빼 들 것이다. 기업은 마치 좌회전과 우회전 신호가 동시에 켜진 사거리 한복판에 멈춰 선 자동차 신세가 된다. 법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법을 어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대한민국 디지털 경제의 심장부에서 버젓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법적 불확실성은 기업의 혁신적인 시도를 위축시키고, 규제 대응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게 만든다. 결국 그 피해는 새로운 서비스의 부재와 시장의 활력 저하라는 형태로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소모적 논쟁 버리고 일관성으로 나아가야
문제의 본질은 칸막이식 행정과 디지털 시대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산업화 시대 부처 이기주의가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 옷을 입고 재등장한 셈이다. 각 부처가 플랫폼이라는 신대륙에 깃발 꽂기 경쟁에 몰두한 사이, 대륙의 질서를 세우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 환자를 두고 두 의사가 각자 자신의 처방만을 주장하는 사이, 환자의 병세만 깊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누가 규제할 것인가'라는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누가 더 유능한 의사인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두 의사가 머리를 맞대고 환자를 살릴 최선의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기존 공정거래법에 플랫폼의 특수성을 반영한 조항들을 추가하여 법체계를 일원화하고, 집행 역량을 공정위로 집중하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독립 법안이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두 기관의 공동 고시 제정이나 사전 협의 절차를 의무화하여 법 해석과 집행의 일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플랫폼 시장에 공정한 질서를 세우겠다는 개혁 의지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출발점이 정부 부처 간 영역 다툼과 비효율이 되면 곤란하다. 시장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만든 법이 혼란 속에서 표류하며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하는 희극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플랫폼 규제의 성공은 법의 개수가 아니라, 기존 법을 아우르는 규제의 지혜와 일관성에 달렸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인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 I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제27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남부지법,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 23년간 법원에서 경력을 쌓았다. 법원행정처 형사심의관, 공정거래 판결작성실무 집필위원 등도 역임했다. 2021년 법무법인 광장에서 공정거래그룹장을 맡아 공정거래를 비롯한 각종 기업 관련 송무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현재 법무법인 YK의 대표변호사이자 공정거래그룹장으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