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말하는 진실…무대 위의 `위대한 개츠비`[문화대상 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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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서울 공연
美·英 이은 세 번째 프로덕션
대립·갈등·복잡한 관계 공간으로 풀어내
기술적·시각적 완성도 높였다
넘버 '로어링 온'·앙상블 안무 백미

  • 등록 2025-09-02 오전 5:00:00

    수정 2025-09-02 오전 5:00:00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공연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한국 무대는 지난해 4월 미국 브로드웨이, 올해 4월 영국 웨스트엔드 개막에 이은 세 번째 프로덕션이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서울 공연 한 장면(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오디컴퍼니는 미·영·한 동시 공연으로 무대 세트 재활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광다이오드(LED) 해상도를 두 배 높이고, 의상 역시 한층 섬세하게 업그레이드해 또 다른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구축했다. 무대·영상 디자이너 폴 테이트 드푸가 한국 프로덕션을 ‘플래그십’(브랜드 대표) 공연이라 평가할 정도로 기술적, 시각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는 한국 공연을 차별화하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그러나 차별화 전략이 단순히 외적인 화려함만을 위한 건 아닐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공간’이 인물과 상황을 설명하고 포괄하는 문법을 갖고 있다. 공연은 올드머니와 뉴머니, 롱아일랜드의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 그리고 뉴욕과 재의 계곡(valley of ashes)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전개된다.

올드머니와 이스트에그를 대표하는 톰과 데이지는 뉴머니와 웨스트에그를 상징하는 개츠비와 삼각관계로 얽힌다. 그리고 황량한 불모지 ‘재의 계곡’에 사는 윌슨과 머틀은 모두의 허위와 탐욕을 드러낸다. 미네소타 출신 닉은 롱아일랜드의 ‘작은 오두막’에 살며 1920년대 재즈 시대의 광기와 다소 거리를 둔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서울 공연 한 장면(사진=오디컴퍼니 제공).

공연은 이들의 복잡한 관계를 직관적인 공간의 이미지로 풀어낸다. 무대의 물리적 공간을 섬세하게 디자인한 세트로 채우는 오디컴퍼니의 역량이 극대화돼 있다. 개츠비 대저택의 화려함은 밀주 사업과 같은 불법적 행위로 신흥 부자가 된 개츠비 자신을 증명하는 도구다. 이에 반해 올드머니의 공간은 고상함으로 가득하다. 다만 이 고상함은 여성을 자신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톰의 폭력성, 개츠비의 재산을 사랑했던 데이지의 허영과 무책임함 위에 내려앉은 ‘재’(ashes)처럼 덧없고 가볍다.

윌슨과 머틀의 공간인 ‘재의 계곡’은 폐허 위에 솟은 공장처럼 황폐하지만, 낡은 광고판 속 거대한 ‘에클버그 박사의 눈’으로 모두를 내려다보며 사건을 아이러니하게 종결짓는다. 상류층에 들어가려 발버둥치다 파괴되는 머틀은 비천하지만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로, 이들 중 가장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표현된다.

제이슨 하울랜드의 음악은 귀에 감기는 드라마틱한 선율로 공간을 채운다. 특히 공연의 처음과 끝에 반복되는 넘버 ‘로어링 온’(Roaring on)은 광란의 시대를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위를 비꼬듯, 리프라이즈 장면의 좀비와 같은 앙상블 안무는 공연의 백미다. 눈을 뒤집고 팔다리를 기괴하게 비트는 파티 애니멀(party animal)들의 움직임이 격화될수록 공연은 ‘쇼’의 이면에 방탕함과 허위에 가득 찬 미국의 자화상을 그림자처럼 담는다.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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