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한 학기 만에 현장 혼란 가중…“정책 보완 불가피”

10 hours ago 3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등으로 불필요 업무 늘어
학부모 반대도 90%…1달 뒤 2학기인데 장관은 공석

서울의 한 학교에서 고교학점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학교에서 고교학점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고교학점제로 업무량이 늘어나 방학도 없고, 매일 10~11시까지 야근한다는 분들이 많아요. 중학교로 탈출하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김희정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고교학점제 태스크포스(TF) 팀장은 올해 1학기부터 도입된 고교학점제에 대해 “선생님들이 고교학점제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교학점제로 학교 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교사는 늘어난 업무 부담을, 대입을 준비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진로 설계 압박과 거세진 사교육 경쟁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국회에서도 고교학점제의 보완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왔다. 교육부도 교사·교수·학생·학부모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향후 고교학점제의 개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2일 국회에 따르면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교육조정위원회를 중심으로 당정협의회를 열고 고교학점제 전반에 대한 점검과 보완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고교학점제는 맞춤형 교육으로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높이고, 대학생들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역량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교학점제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전면 도입됐다.

현장에서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는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다. 고교학점제에서 학생이 학점을 취득하려면 과목 출석률이 3분의 2 이상이 돼야 하고, 학업 성취율이 40% 이상이어야 한다. 학업 성취율은 A(90% 이상)부터 E(40~60%)까지 5단계로 나뉜다.만약 학생들이 최소 성취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경우,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주일 수업시간의 5배만큼 별도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예컨대 일주일에 3시간이 배정된 수업에서 학생이 최소 성취수준에 미달될 경우, 교사는 해당 학생에 대해 15시간(3시간 곱하기 5)을 추가로 교육해야 한다. 일부 교사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집필시험의 비중을 줄이고, 수행평가를 늘려 학생들의 이수 비율을 최대한 늘리는 실정이다.

이는 모두 교사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김 팀장은 “교사 입장에서는 없던 보충 지도 수업이 생겨난 것이라 업무량이 많아진 것”이라며 “(학생의 학업) 결손이 오랫동안 이뤄진 것이라 실효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출석 관련 업무도 가중됐다. 고교학점제에선 학생들의 출석을 과목별 교과 교사가 작성하게 돼 있는데, 담임교사가 아니라면 구체적인 학생들의 출결을 일일이 확인해 시스템에 반영하기 어려워 수업 시간 이후에도 교사들끼리 계속 출결과 관련해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김 팀장은 “학생의 출결은 O, X가 아니라 (불출석할 경우) 오지 않은 사유에 대해 전부 기재해야 한다”며 “이런 내용을 교과 교사는 알 수 없어 담임 교사와 학생과 얘기해 (사후에) 출결을 바꾸는 일이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담임교사는 생활기록부 작성에 애를 먹고 있다. 고교학점제 시행에 따라 1년에 1500바이트씩 쓰던 학생부를 학기별로 쓰게 됐기 때문이다. 수업과 생기부 기재 모두 늘어난 상황이라, 감당 가능한 업무량을 넘어섰다는 게 교사들의 주장이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교사노조연맹·행복한교육학부모회 등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교사노조연맹·행복한교육학부모회 등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학생들이 대입을 위해 미리 진로를 설정하고, 해당 과목에 맞게 과목 계획을 짜 수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육 제도에 혼란을 느끼는 이들이 사교육의 도움에 더 의존하기도 한다.

앞서 교사노조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함께 실시한 고교학점제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국 학부모 2483명 중 “과목 선택이나 진로 설계를 위해 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전체의 90%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보력이나 경제력이 부족한 가정·지역일수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의견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장의 혼란이 선택과목 시행이 본격화되는 내년부터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대부분 공통과목을 이수해 그나마 덜 하지만, 선택과목의 숫자와 비중이 늘어나면 현재의 폐해는 심해지고 입시를 둘러싼 선택과목간 유불리 문제도 드러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진 정책위의장은 교육당국과 협의해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에 따른 과도한 업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충지도 시수 감축과 운영유연화, 선택과목 이수 개선, 공동교육과정 확대 등 실효성있는 보안대책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 1달 뒤 2학기가 시작하는 가운데 교육 정책의 키를 쥔 교육부 장관직은 여전히 공석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의 자문위원회 운영을 비롯해 당과 교육당국 간의 실효성 있는 협의 역시, 교육부 장관의 인선에 따라 더욱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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