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공연 메카’ 대학로의 터줏대감인 오픈런 공연계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공연 제작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픈런은 폐막일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상시 운영하는 공연들로, 연극 ‘라이어’, ‘옥탑방 고양이’, 뮤지컬 ‘빨래’, ‘김종욱 찾기’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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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전경(사진=김현식 기자) |
21일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한 오픈런 연극·뮤지컬의 티켓 판매액은 209억8129만 원으로 전년(221억5157만 원)대비 5.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티켓예매 수도 131만2691장에서 114만8852장으로 12.3% 줄었다.
경기 침체에 따른 대학로 상권 위축과 12·3 비상계엄 선포 후 국정 혼란 등의 여파로 실적 악화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공연계 관계자는 “탄핵 정국 여파로 연말 특수를 누리지 못한 게 가장 뼈 아팠다”며 아쉬워했다.
팬덤 없는 오픈런, 경기침체 직격탄
‘오픈런’은 공연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춰진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에선 일반적인 공연 형태다. 하지만 공연장이 부족한 국내에선 통상 2~3개월 정도 공연한 뒤 휴식기를 거쳐 다시 공연하는 ‘리미티드 런’ 형태가 대세로 굳어져 있다.
국내에서 오픈런 공연은 약 140개의 소극장이 밀집해있는 대학로를 중점으로 이뤄지고 있다. 주로 일반 관객층을 타깃으로 삼는 작은 규모의 로맨스나 코믹 장르 위주다. 공연계 관계자는 “일반 관객 위주의 오픈런은 소위 ‘회전문 관객‘’으로 불리는 배우 팬덤 대상의 작품들에 비해 경기 침체, 소비 위축 여파에 더욱 민감하다”고 말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4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연극 부문 티켓 판매액 상위 10개 공연 목록에 이름을 올린 오픈런 작품은 ‘한뼘사이’ 단 한 편뿐이다. 한 해 전인 2023년만 해도 총결산 순위 ‘톱 10’에 4개 작품이 포함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는 “주요 공연 제작사들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무대에 못 올렸던 대작 뮤지컬들을 잇따라 선보인 데다 황정민의 ‘맥베스’, 조승우의 ‘햄릿’ 등 스타 배우를 앞세운 연극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대학로 오픈런을 향한 일반 관객들의 관심도가 떨어졌다”고 짚었다.
관객 감소에 임대료 상승 ‘이중고’
해가 바뀌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집계한 올 1분기 실적을 보면 대학로 오픈런 연극·뮤지컬의 총 티켓 판매액과 티켓 예매 수는 각각 전년동기대비 1.2%, 3.4%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연 상연 횟수는 1년새 7131건에서 8017건으로 12.4%나 늘었는데도 판매액과 예매 수 모두 줄었다는 점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대학로 대표적인 오픈런 연극인 ‘옥탑방 고양이’가 흥행 부진에 2010년부터 공연한 ‘틴틴홀’을 떠날 수 있다는 소식에 업계의 위기감이 더욱 커진 모습이다.
공연계 관계자는 “올 들어 오픈런의 상연 횟수를 늘렸는 데도 매출은 지난해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발생한 손실을 메우지 못했는데 관객 수가 반등하지 않고 있다. 최근엔 임대료까지 올라 공연을 유지하기 힘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