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스웨덴 한림원 공식회견
'채식주의자' 유해도서 낙인
작가로서 가슴이 아픈 일
'제2의 한강' 배출하려면
문학 읽는 근육을 길러야
노벨상 기증 물품은 '찻잔'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6일(현지시간) 열린 노벨문학상 기자회견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일정의 첫 공개 행보였다. 이날 그는 한국의 비상계엄 상황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선 미리 써둔 원고를 차분하게 읽을 만큼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답변 도중 기자들과 가벼운 웃음을 주고받을 정도로 여유 있는 표정을 잃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한국의 비상계엄 상황을 둘러싸고 한강 작가는 "올해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이라고 입을 떼면서 "아직 어떤 상황이 전개되는지 잘 모르기에 미래 상황을 예측하긴 쉽지 않다"며 "다만 언어란 뭔가를 강압적으로 눌러 막으려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 않는 속성을 가진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계속 말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언어의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첫 질문에 응답했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유해도서 지정 논란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는 솔직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이 소설은 스페인 고교생이 주는 상을 2019년에 받은 작품"이라며 "당시 스페인에서 학생들을 만났는데 소설을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이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의 차이도 있기에 한국의 중고교 학생들이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다. 그래서 낭독회 때 고교생들이 '채식주의자'에 사인을 해달라며 내게 오면 이건('채식주의자') 나중에 읽고 '소년이 온다'를 읽으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 책이 유해도서로 지정되면 사서분들이 이후로도 검열을 하게 된다. 책이란 건 굉장히 중요하고 우리는 책을 읽으며 공존을 감각하게 된다"고 답했다.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 소설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뭔가를 거부하냐는 건 무엇인가의 질문부터 우리 신체는 우리의 피신처일 수 있는가 등 다채로운 레이어(겹)를 가진 작품"이라며 "한마디로 '채식주의자'를 정의하긴 어렵다. 수많은 질문으로 가득 찬 소설이란 점을 기억해달라"고 덧붙였다.
또 한강 작가는 "글을 쓴다는 건 개인적인 것"이라며 "모든 독자가 작가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작가는 열렬한 독자다. 책을 학교에서 1년에 서너 권 읽고 토론하고 다각도로 읽게 해 문학작품을 읽을 수 있는 근육을 기르도록 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노벨상 수상자의 소장품 기증식에서 찻잔 한 개를 스웨덴 한림원 측에 기증했다. 한강은 찻잔과 함께 작은 메모를 남겼는데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홍차잎을 우려 마시는 일이 하루의 일과였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관련해 "소장품 기증식을 거창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 루틴을 보여주는 것, 제게 소중한 것을 기증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하루에 몇 번씩 책상으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딱 그 잔만큼의 홍차를 마셨다. 그 찻잔은 계속해서 제가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呪文) 같은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한강 작가는 이날 스웨덴 한림원 관게자들과 식사한 뒤 '노벨 의자'에 서명하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소장품 기증식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오찬 중 앉았던 의자의 바닥면에 서명하는 전통이 있다.
한강 작가는 또 오는 10일 노벨상 시상식에서 자신이 입게 될 드레스를 살펴보기도 했다. 스톡홀름의 디자인 전공 대학생들이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며 제작한 옷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 문장이 주름마다 새겨진 백색 드레스로, 오른손의 긴팔 소매를 손목까지의 길이보다 훨씬 길게 늘어뜨린 것이 특징이다.
그는 문학의 역할에 대해 "문학이란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 가는 행위"라며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렇기에 문학은 언제나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의 열기가 뜨거웠다. 미국, 일본, 인도 등 전 세계 언론이 참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한강 작가는 여유를 잃지 않았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자신의 휴대폰을 쳐다보며 "내 벨소리가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고 '채식주의자'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자 "너무 길었죠?"라고 통역사에게 말하기도 했다.
[스톡홀름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