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돋은 이불로 누운 아들을 덮는다… 이제 잠들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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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 〈111〉 어린 아들의 장례

네메시 라슬로 감독의 영화 ‘사울의 아들’(2015년)은 극한 상황 속에서 유대교 율법대로 아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영화를 보며 당나라 우곡(于鵠)이 어린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쓴 시가 떠올랐다.

시는 늦게 얻은 아들의 죽음과 장례 정경을 별다른 수사도 없이 진솔하게 표현했다. 과거 유교식 상장례에선 미성년자의 죽음은 별도로 상례(殤禮)라 부르고, 예법도 일반 상례(喪禮)에 비해 낮춰 적용했다. 특히 7세 이하의 망자에 대해선 상복도 입지 않고(無服之殤)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어린이의 죽음은 애도의 형식에서조차 소외됐다고 볼 수 있다. 시에선 특히 아이를 매장하러 나가며 슬피 우는 엄마의 모습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시인도 울고 싶었지만 아이의 죽음엔 곡하지 않는다는 예법 때문에 그저 탄식만 할 뿐이다. 아이의 마지막을 자신의 바람대로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배어 나온다.

영화 ‘사울의 아들’에서 사울은 유대교 율법대로 죽은 아들을 장송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사울의 아들’에서 사울은 유대교 율법대로 죽은 아들을 장송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반면 영화 속 사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교 율법대로 아들을 장송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부검의는 아들은 이미 죽었으니 미련 두지 말라 하고, 동료들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장례를 어떻게 치를 수 있냐고 힐난한다. 하지만 사울의 입장에선 아들의 시신을 방치할 순 없다. 시와 영화는 모두 원하는 대로 아들 장례를 마치지 못한다. 시인은 예법 때문에 아이에게 수의도 입히지 못하고 관도 없이 큰 길가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사울은 끝내 장례를 도와줄 랍비를 찾는 데 실패하고 강물에 아들의 시신을 빠뜨리고 만다.

장례는 망자만이 아니라 남은 가족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죽음 연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 치르기를 권한다(‘어린이와 죽음’). 사울이 아들 장례에 집착한 이유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면, 강보만 덩그러니 남은 아이의 침상 앞을 떠나지 못하는 시인의 헛헛한 마음은 아들의 장례를 흡족하게 치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에겐 자신들만의 작별 의식이 필요하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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