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가 잘 돼야 여기 사는 저희들이 더 좋아지는 거죠. 내 나라가 강하고 튼튼하기를 바라면서 투표에 참여했습니다."(버지니아주 거주 홍창균·63)
20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 코리안커뮤니티센터. 워싱턴DC와 버지니아주, 웨스트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등 주미대사관 관할지역의 재외국민 투표소로 지정된 이 센터에는 아침부터 미국 북동부 일대 한인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지난 12월 계엄사태와 이로 인한 정치적 갈등을 언급하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4시간을 달려서 투표하러 왔다고 한 성진옥 씨(47)는 "20여년 해외에서 살면서 한 번도 투표한 적이 없었는데 작년 계엄사태를 보고 깜짝 놀라서 정치 뉴스를 보다가 투표소에 오게 됐다"고 했다. 성씨는 "이전엔 내가 4시간이나 걸려서 여기 와서 한 표를 행사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한표를 더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씨의 첫 투표를 위해 동행한 남편 장준호 드렉셀 의대 교수(48)는 "시민권자여서 저는 투표권이 없지만, 앞으로 10년은 더 잘 사는 한국이 되었으면 해서 아내의 투표에 동행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북부 버지니아주 애시번에서 투표하러 온 홍 씨는 "(한국에서) 나와 살다 보니까 좀 더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면서 "여기 살다 보면 여기 경제(사업)가 있으니까 들어가지 못하지만, 나라가 힘이 없으면 밖에서 하는 저희들은 더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30대라고만 밝힌 한 여성 유권자는 "(한국) 경제가 코로나 여파로 어려워졌다가 다시 활성화되려고 하는데 (정치 때문에) 다시 침체되려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투표를 통해 차기 정부가 "밸런스를 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밝혔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이날 오전 9시 투표 후 기자들과 만나 "재외투표는 우리 재외동포들의 의견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해주시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던 만큼 현장에서는 혹시라도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를 당부하는 분위기였다. 조 대사는 "투표가 완료되는 대로 (투표용지는) 외교 행낭 형식으로 바로 서울로 보내진다"면서 "문제가 없도록 24시간 보안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주미대사관 측은 매일 투표한 결과가 총영사관 금고에 밀봉 보관되며 투표가 끝난 후 외교 행낭으로 전 세계에서 투표용지가 인천공항에 집결되고, 공항에서 각 관할지역으로 재분류 발송된다고 설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파견된 하언우 재외선거관은 "20대 대선(2022년) 때 주미대사관 관할지역의 등록 인원은 4254명이었고 이번에는 4272명이 등록했다"면서 "2022년 당시에는 2994명 투표했으며 이번 투표인원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선거권이 있는 한국인 규모는 약 4만2000명으로 추정된다.
이번 선거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사전등록 시기 등에 대해서도 정규 선거에 비해 홍보기간이 짧았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대통령선거에는 적극적인 투표 참여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