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 1560원선 위협 … 5가지 하락 요인 살펴보니
올해 하반기 시작과 동시에 달러당 원화값이 1560원 선까지 급락하며 원화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고환율은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는 측면이 있으나 역으로 에너지·원자재 수입 단가를 밀어 올려 국내 물가 상승을 압박한다.
특히 수입 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경우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저하되고, 생산 원가 부담을 이기지 못한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등 내수 경기 전반에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원화값 약세 추세의 원인으로 △외국인의 과도한 순매도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 △대만과 다른 수급 구조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 △원·엔 동조화 현상 등을 꼽는다.
◆韓 세계국채지수 편입 효과 상쇄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순매도다. 1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올 들어 국고채를 꾸준히 매입하는 데 반해 한국 주식은 매도하고 있다. 올해 3월 31일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개시 이후 외국인 국고채 순매수는 체결 기준 37조3000억원(3월 30일~6월 26일), 결제 기준 30조7000억원(4월 1일~6월 26일)인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올해 2분기 동안 외국인의 국내 증시 매도분은 총 88조원에 달했다. WGBI 편입에 따른 외국인 투자금 순유입 효과를 상쇄하고 남는 규모다. 특히 지난 6월 29일 하루에만 외국인은 도합 7조700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매도했다. 국내 증시 급등에 따른 외국인 차익실현세가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1~2일 후에 환전을 하게 되는데, 하루에만 달러 환전 수요가 수조 원이 새로 생기면서 원화값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내국인은 지속적으로 해외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내국인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올해 6월 29일 기준 1899억달러로, 지난해 말 1635억달러 대비 264억달러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한 해 상승분인 510억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지난해와 비슷하게 올해도 내국인의 미국 주식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국내 자본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외환 수급 측면에서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순증 기준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반해 내국인의 해외 투자는 견조한 흐름을 지속하며 원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대만과의 비교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최근 4개 분기 동안 경상수지와 내·외국인 주식 투자를 합산한 '외환 순공급' 규모는 한국이 210억달러에 그친 반면 대만은 1667억달러에 달했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절반 수준인 대만의 달러 순공급량이 한국보다 약 8배나 많은 셈이다. 다만 외환당국은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한 대만과 자유변동환율제인 한국의 환율 운용 체계 차이를 고려할 때, 두 국가의 수치를 평면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오는 10일 예고된 SK하이닉스의 나스닥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나스닥 ADR 상장을 통해 최대 45조4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다. 만약 이를 국내 외환시장에서 환전하게 되면 달러당 원화값이 최대 40원가량 상승할 것이라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미 금리 차 등 펀더멘털도 도마 위
수급 불균형이 환율 상승의 직접적 원인이라면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로 대표되는 펀더멘털 약화는 저변의 핵심 동인이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6월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매파적 금리 동결을 단행하면서 연내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이 확산한 상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글로벌리서치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미 연준이 9월, 10월, 12월에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씩 총 3회 인상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공식화했지만, 시장에서는 한미 간 금리 격차 해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원·엔간 동조화 현상 역시 변수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의 상관계수는 0.9에 달했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두 환율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날 원화값 하락은) 엔화 약세 흐름에 원화가 동조화된 데다 외국인 주식 순매도세가 이어진 영향"이라며 "외국인이 상반기에만 1000억달러 규모의 국내 주식을 순매도한 만큼 하반기에는 매도 규모가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원화와 엔화의 동조화 현상이 뚜렷해진 것은 한국과 일본의 산업·수출 구조가 비슷하다 보니 글로벌 투자자들이 두 국가를 동일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과 일본 모두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미국 의존도가 높은 첨단산업 비중이 커졌는데, 이에 따라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나 글로벌 자금 이동이 원화와 엔화에 비슷한 방향으로 반영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나현준 기자 / 김명환 기자 / 김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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