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9일 처음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소속인 김남근 의원(민생수석부대표)이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스톡옵션 등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곤 자사주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골자다.
김 의원은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사주 오남용 문제가 심각하다”며 “임직원 보상(스톡옵션)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기업들이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1년 안에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을 계획이다. 대주주가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주주환원 확대를 유도하는 것이 목표다.
기존에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도 의무 소각 대상에 포함된다. 김 의원은 “자사주를 많이 가진 기업은 법안 유예 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내에 처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임직원 보상 등 예외적인 상황에선 자사주를 계속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한다. 이 경우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한다.
김 의원을 시작으로 이달 임시국회에선 다양한 자사주 소각 관련 법안 발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각종 법안을 테이블 위에 모두 올려놓고 논의한 뒤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한다는 목표다. 현재 코스피5000특위를 중심으로 ‘자사주 보유 비율이 10%를 넘으면 소각’ ‘자사주 처분 시 기존 주주에게 매수 권리 부여’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안 형태는 자본시장법보다 상법 개정안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법은 이춘석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 관할이다. 자본시장법을 다루는 정무위원회의 위원장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다.
법안 수위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집중투표제 등 민주당이 추진 중인 다른 상법 개정 사안의 처리 여부에 달렸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여당 관계자는 “남은 상법 개정안을 경제계가 별 반발 없이 수용한다면 너무 강한 수위의 자사주 소각 법안까지 밀어붙이기가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코스피5000특위는 시간을 들여 충분히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오기형 특위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자사주 소각 법안과 관련해 “발의안들을 차분히 검토하고 토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