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 부회장, 이재현 CJ 회장, 구자은 LS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양종희 KB금융 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를 만나기 위해 30일 서울 테헤란로 조선팰리스 강남호텔을 찾은 기업 총수들이다. 트럼프 정부의 막후 실세와 ‘직통 라인’을 트기 위해 예정된 일정을 급히 바꾼 이들은 각각 1시간 정도 주어진 시간 동안 미국의 관세 정책 향방과 미국 투자 분위기 등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주니어는 동행한 벤처투자기업 ‘1789캐피털’의 공동 설립자인 오미드 말릭 대표, 크리스토퍼 버스커크 최고투자책임자(CIO)와 함께 국내 기업들에 펀드 출자 등을 요청했다.
◇ 금융·IT 등 다양한 기업 회동
30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주니어는 국내 15개 기업의 총수들을 만났다. 제조업은 물론 금융, 정보기술(IT), 바이오,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인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맞이한 트럼프 주니어와 말릭 대표, 버스커크 CIO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막후 실력자로 꼽힌다. 트럼프 주니어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비롯해 내각 인선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릭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과 행정부 구성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등의 지지선언을 끌어낸 작년 8월 ‘마라라고 회의’를 주도한 사람이 말릭 대표였다. 버스크릭은 밴스 부통령과 함께 보수 성향의 정치 단체인 로크브리지 네트워크를 공동 설립하는 등 트럼프 정부의 정책 자문을 맡고 있다.
이날 ‘릴레이 면담’에서 첫 스타트를 끊은 사람은 김 부회장 등 한화 3형제였다. 이들은 트럼프 정부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방위산업과 조선 분야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는 최근 미국 투자에 가장 열을 올리는 기업으로 꼽힌다. 한화오션은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한화솔루션은 수조원을 들여 조지아주에 미국 최대 태양광 모듈 생산단지를 짓고 있다. 업계에선 김 부회장이 트럼프 주니어에게 세제 혜택 확대 등을 언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부회장은 면담 직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으로 이동해 현장을 찾은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도 만났다.
◇ 개인 사업차 방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은 인도네시아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조선 팰리스호텔로 향했다. 그는 트럼프 주니어와 미국내 바이오 분야 추가 투자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뉴욕팰리스 등 롯데호텔이 미국에서 운영하는 호텔과 롯데케미칼의 루이지애나 석유화학단지 운영상황에 대한 얘기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에너지 분야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에 가스터빈 공급을 추진하고 있고, 소형모듈형원자로(SMR) 주기기 공급 계약도 잇따라 맺었다. 두산밥캣은 굴착기 등 건설기계 제품 대부분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이해진 의장이 면담에 나선 네이버는 “인공지능(AI) 협력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일부 기업들은 트럼프 주니어가 미국 행정부에 공식 직함이 없는데다 자신이 벌이는 사업에 돈을 태울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방한했다는 점에서 만남을 꺼린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측과 소통창구를 만들 수 있는 자리였지만 개인 사업에 투자하라는 식의 ‘청구서’도 함께 내밀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 가족의 호텔과 자산을 운용하는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날 1박2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출국했다.
김우섭/조미현/김진원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