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일러업계의 맞수인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홀딩스가 지난해 모두 역대 최대 실적을 내며 양강 구도를 이어갔다. 보일러 분야에선 내수 침체를 수출로 뚫은 경동나비엔의 독주가 계속됐다. 귀뚜라미는 보일러 부문의 적자를 냉방 사업으로 만회하며 본업의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다.
◇해외에서 질주한 경동 보일러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경동나비엔그룹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3839억원과 영업이익 1326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귀뚜라미그룹 지주사인 귀뚜라미홀딩스 역시 지난해 매출 1조2507억원, 영업이익 496억원으로 최대 실적을 올렸다.
겉으론 엇비슷한 호실적이지만 속은 달랐다. 경동나비엔은 모태 사업인 보일러·온수기 등 난방 분야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난방 사업 비중이 80% 이상인 경동나비엔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조2469억원, 1493억원이었다. 북미 시장의 콘덴싱 온수기, 순간식 가스 온수기, 벽걸이형 콘덴싱 분야 점유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수출 강자로 자리 잡은 결과다. 이 회사는 전체 매출 중 70% 수준인 9423억원을 해외 시장에서 거둬들였다.
반면 국내 시장에 주력해온 보일러 회사들은 지난해 건설 경기 침체의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귀뚜라미홀딩스의 보일러 계열사인 귀뚜라미의 지난해 매출은 3225억원으로 전년(3409억원) 대비 역성장했다. 영업손실도 45억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업계 3위 린나이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2869억원으로 전년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81억원에 그쳤다. 4위 업체인 대성쎌틱에너시스는 1299억원 매출에 58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냉방 투자 결실 거둔 귀뚜라미
귀뚜라미홀딩스는 난방 부문에선 부진했지만 냉방 사업에선 선전했다. 귀뚜라미범양냉방, 센추리, 신성엔지니어링 등 귀뚜라미홀딩스 산하 냉방공조 3사는 지난해 매출 6620억원과 영업이익 433억원을 올렸다. 도시가스 기업인 귀뚜라미에너지도 87억원의 이익을 거뒀다.
귀뚜라미홀딩스는 2006년 귀뚜라미범양냉방을 인수한 데 이어 2008년 신성엔지니어링, 2009년 센추리를 잇달아 사들이며 냉난방을 아우르는 에너지기기 전문 기업으로 변신했다. 수요가 늘고 있는 데이터센터 냉각시스템부터 냉각탑, 송풍기, 냉동기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최근엔 공기 냉각 대비 전력 사용량을 10분의 1로 줄이는 액침냉각 시스템도 개발했다. 지난해 수백억원 상당의 발전소용 냉각탑 프로젝트, 40㎿급 데이터센터 냉각시스템 같은 신규 일감을 확보하기도 했다.
양사의 전선은 더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두 회사는 기존 사업에 렌털을 어떻게 결합해 시너지를 낼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달 주방기기 브랜드 나비엔매직을 내놓으며 렌털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귀뚜라미는 냉난방 제품에 렌털을 접목해 소비자 선택지를 넓히면서 데이터센터용 냉난방 솔루션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보일러업계 관계자는 “내수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어 본업 수익성을 강화하며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게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관세 전쟁에서 누가 수출 시장을 잡고 렌털업 서비스 품질을 얼마나 제고할 수 있느냐가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를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