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든때 민감국가 최하위 범주 韓 추가”
“과학·기술협력 금지 아니다”지만 파장 촉각
정부, 두달간 ‘깜깜이’…부랴부랴 “美와 협의”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포함한 사실이 15일 확인되면서 양국 간 원자력·인공지능(AI) 등 첨단 과학기술 협력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한국을 SCL에 포함한 구체적 사유에 대한 설명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한국이 SCL에 오른 것이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을 금지·제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일단 미국 측의 이같은 조치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직전인 지난 1월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지난 10일 ‘한겨레’ 보도로 해당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한국 정부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 SCL에 포함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한국이 SCL에 포함된 사실을 약 두 달이나 파악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한 셈이어서 비판과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측 설명에 따르면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지정국가(ODC)’에 추가했다. 미국은 정책적인 이유로 특별히 고려되는 국가들을 ‘민감국가’로 분류한다. 주로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에 대한 위협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인해 특별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국가들을 SCL에 포함한다.
미국 측은 “현재 한국과의 양자 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다”면서 “DOE는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증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SCL에 포함된 것과 양국 간 핵 에너지·원자력 등에 대한 협력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셈이다.
美 “관련 국책연구진, 韓방문 6주전 사전승인”
또 “미국인이나 DOE 직원이 해당 국가를 방문하거나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이 금지되지 않으며 해당 국가 국민이 DOE를 방문하는 것도 금지되지 않고 기술 협력 역시 금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방문과 협력은 사전에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립연구소들에는 ‘방문 6주전’ 반드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민감국가에 한국이 추가된 리스트가 하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첨단 과학기술 협력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겠지만, 사안별로 적절성과 시급성, 보안성 등을 따져보기 위한 중간장치를 둔 셈이다. 현재로선 미국이 사전승인 절차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는 미지수다.
외교부는 이날 공식입장을 발표해 “정부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미 정부 관계기관들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며 “한미 간 에너지, 과학기술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적극 교섭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안팎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SCL에 추가한 이유와 배경 등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이 직접 ‘독자 핵무장’ ‘잠재적 핵능력 확보’ 등을 언급하며 미국의 핵 비확산 기조에 어긋난 입장을 밝힌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전임 한국 정부들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기조 하에 국내 핵무장 여론에 거리를 뒀던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이 나서 독자 핵무장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눈에 띄게 다른 행보를 취하기도 했다. 실제로 SCL에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핵 비확산 우려와 관련한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다.
‘尹정부 핵무장론 거론이 원인’ 관측에
‘비상계엄 지역 불안정이 문제’ 반론도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한국 내 독자 핵무장론이 아니라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민주주의 헌정질서 훼손이 SCL 등재의 직접적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역내 불안정’이 SCL 분류 기준 중 하나인 만큼, 한국이 45년 만의 비상계엄으로 리더십과 정치상황 전반이 파행을 겪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됐다는 설명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SCL에 추가한 2025년 1월의 한국 상황을 돌아보면, 12월 3일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조치가 있었고 이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고 짚었다.
그는 미 에너지부의 SCL 분류기준 상 ‘지역 불안정’이 한국의 SCL 포함 이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펼쳤다. 정 센터장은 “정치권에서의 자체 핵무장론 확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에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추가했다는 주장은 당시 상황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野 “尹파면이 해법” 韓“조선 카드로 美와 협상을”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한국의 SCL 포함과 관련해 한미동맹 균열을 우려하며 윤 대통령 파면을 통한 국가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성회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최고 수준의 한미동맹이라더니, 민감 국가 지정인가. 내란도 모자라 한미동맹도 흔드는 위험한 정권을 하루빨리 파면해 끝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을 정상화해 국가 안보를 다시 챙기는 일은 내란 우두머리, 대통령직 무게를 망각하고 미국에 가서 ‘자체 핵무장 능력’ 운운한 아둔한 자의 신속한 파면에서 시작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SNS에 글을 올려 “정부는 먼저 민감국가 지정 경위와 향후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상세히 파악해야 한다”면서 “4월 15일 효력 발생 이전에 미국과 집중 논의를 통해 민감국가에서 벗어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전 대표는 “다행히 새로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와는 협상 카드가 많다”면서 최근 미 해군과의 유지·보수·정비(MRO) 계약처럼 한미 간 첨단과학기술 분야 연구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훈 기자·워싱턴 최승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