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10일과 11일(현지시간) 이틀에 걸쳐 관세 협상을 벌였다. 협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관세 인하와 중국산 펜타닐(합성 마약) 단속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 회의 직후 “큰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비공개 협상 진행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가 이끄는 양국 대표단은 10일 오전 10시부터 밤 8시까지 마라톤협상을 한 데 이어 11일에도 다시 마주 앉았다. 회담은 18세기에 건축된 제네바의 유명 저택 ‘빌라 살라딘’에서 이뤄졌다. 현재 유엔 제네바 사무소 주재 스위스 대사관저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회담은 대표단의 시작 발언 공개 없이 진행됐고 양측이 만난 사진도 배포되지 않았다.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진 것이다. AP 통신은 양국 대표단이 회의 종료 후 숙소로 돌아가면서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날 협상 직후 SNS에 “오늘 스위스에서 중국과 매우 좋은 회의를 했다”며 “많은 사안이 논의됐고, 다수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적으로 우호적이면서도 건설적인 방식으로 협의가 이뤄졌다”며 “중국과 미국 양국 모두의 이익을 위해, 중국이 미국 기업에 더 개방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회담 기간 내내 협상 진행 사실만 전했을 뿐 협상 결과와 관련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앞서 중국 정부와 중국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는 미국이 관세를 전면 철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무역 단절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수입품에 14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은 이에 맞서 125%의 관세를 매기는 동시에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펜타닐도 협상 의제로
미국과 중국은 이번 협상에서 관세 수준을 두고 공방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미국에 대중 관세 전면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전인 9일 SNS를 통해 “대중 관세는 80%가 적절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콧 B(베선트 장관)에게 달렸다”고 했다. 친트럼프 성향인 뉴욕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관세를 50%대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태도에 따라 관세 인하는 가능하지만 대중 관세 자체를 폐지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스위스 협상에서 양측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산 펜타닐도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협상 대표단에 공안과 마약 단속 분야의 최고위급 인사인 왕샤오훙 공안부장을 포함시켰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부과한 145%의 추가 관세 중 20%가 중국이 미국으로의 펜타닐 유입을 방관하고 있다는 이유로 부과한 것이다.
◇“10% 기본관세 유지”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중국은 이번 협상에 앞서 자국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현 상태가 계속되면 양국 모두에 큰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관세로 인한 미국 내 가격 상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고, 중국도 수출 감소가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자유무역을 상징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 미·중 간 첫 관세 협상이 이뤄진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를 견제하려는 중국의 의중이 관철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취재진에게 무역 협상국에 부과 중인 기본관세 10%와 관련해 “최소 관세율 10%가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대통령은 다른 모든 국가와의 무역 협상에서 10% 기준 관세를 유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합의가 완료된 이후에도 영구적으로 그 관세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냐’고 묻자 레빗 대변인은 “대통령은 해당 10% 기준 관세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입장”이라고 답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이혜인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