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닌텐도, 아식스, 유니클로 ….’ 이들 일본 대기업이 지닌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일본 수도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현지에서 활동하는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에 진출할 때 도쿄에서만 기회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가깝지만 먼 이웃 나라 일본으로의 진출은 최근 들어 국내 IB 업계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가 아닌 지역으로의 진출은 다소 어려운 과제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관계자들과 일본 지역 기관·기업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하는 일본계 벤처캐피털(VC)이 있어 화제다. 바로 빅 임팩트로 회사는 VC 펀드를 운영할 뿐 아니라 현지 진출 원하는 기업을 현지 지자체·기업과 연결해주는 전략 컨설팅 역할도 맡고 있다.
이데일리는 배승호 빅 임팩트 이사를 본사가 위치한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의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에서 만났다. 배승호 이사는 일본 와세대와 중국 베이징대를 나와 컨설팅펌, 스타트업, VC 업계를 넘나들며 일본 현지 네트워크와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국내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일본 지역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일본 진출 시 유의점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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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승호 빅 임팩트 이사가 일본 지역경제에서 국내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찾을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소영 기자) |
글로벌 투자자에 열려 있는 日 지역사회
빅 임팩트는 일반적인 민간 VC와는 성격이 다르다. 국내 정부기관, 일본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스타트업을 현지 출자자(LP) 및 자본시장 관계자들과 연결해주는 일종의 전략 컨설팅까지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배 이사는 “일반 VC는 좋은 딜(deal)을 소싱하는 게 중요한데 우리는 이들과 달리 투자 집행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며 “대표뿐 아니라 나도 비즈니스를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냥 펀드만 굴리는 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비즈니스를 함께 할 수 있는 펀드를 조성하자고 의기투합했다”고 전했다.
그들은 회사의 비즈니스 기회를 ‘지역 활성화’라는 키워드에서 찾았다. 배 이사의 설명에 따르면 인구 대다수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지난해 기준 인구수 1억 2310만명 중 도쿄에 거주하는 인구가 1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인구가 각종 지역 도시에 분포돼 사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마다 내수경제가 탄탄하고, 지닌 강점이 다르다. 그는 이 때문에 지방에서도 충분히 국내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찾을 기회가 많다는 이야기를 덧붙었다.
특히 빅 임팩트는 관동지역 비즈니스 모델(BM)과 신기술을 관서지역으로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일본 지방에는 아직 민간 운용사(GP)가 거의 없고 지방은행이나 기업이 차린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주류”라며 “그러나 이들은 지방에 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도쿄에서 비즈니스 리터러시를 가지고 투자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이유를 들었다.
빅 임팩트는 또한 일본 관서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과 현지를 연결해 지방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한다. 관서지역이 일본 내에서도 도쿄 다음으로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자금 조달이 필요한 글로벌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어서다. 관서지역의 주요 도시로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가 있다. 닌텐도, 아식스 등 글로벌 기업을 포함한 1000여 개 상장기업이 관서지역에 포진해 있다. 외교부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관서지역의 지난해 지역총생산(GRP)은 89조 1274억엔(약 890조 2758억원)으로 폴란드(8629억달러)와 비슷한 세계 20위 수준이다. 일본 내 경제 비중은 15.3%에 달한다.
AI·의료 발달한 ‘고베’ 눈여겨 봐
그는 다가오는 8월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았다는 점과 최근 직항 항공편이 생겼다는 점을 들며 ‘고베시’에 특히 기회가 많다고 강조했다. 고베는 철강과 무역으로 자금을 축적한 도시다. 고베 지역 출자자(LP)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BM)을 유치하고자 한다는 점을 파고들어 지자체와 지역 기업에 스타트업을 연결해 신규 시장을 만들어줌으로써 투자수익률(ROI)을 창출할 기회가 열릴 거라는 분석이다.
고베는 현재 레거시 산업을 기반으로 볼트온(bolt on·동종업계 기업을 인수해 회사 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할 수 있는 글로벌 자본 유치에 적극이다. 이외에도 고베에는 첨단산업이 성장할 토대가 마련돼 있다. 예컨대 병원, 대학, 의료기관 350여 개가 모인 일본 최대 규모 의료 산업 클러스터가 존재한다. 국내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도 이곳에 일본 최초 사무소를 세웠다.
이에 더해 아시아에 두 곳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AI) 랩이 고베에 있다. 이를 이유로 시 차원에서 AI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하자는 의지가 강하다. 또한 고베는 일본에서 서양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도시라 골프장, 온천, 경양식 등 관광 콘텐츠가 많아 관련 산업 활성화에도 적극이다.
그렇다면 국내 관계자들이 일본 시장에 진입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는 “예컨대 관동 LP는 전국구 투자를, 관서 LP는 지역 투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고 자금을 조달할 때 LP별 색깔에 맞출 필요가 있다”며 “또한 일본은 각 지역경제가 활성화된 것처럼 하나의 서비스나 제품이 독과점하는 경우가 잘 없고 다양한 회사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체제로, 한 시장에 수많은 플레이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