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직장인은 '한숨' 깊은데…은퇴할 생각에 설렌다는 美,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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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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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직장인 이모 부장(47)은 주식 계좌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몇 년 전 모았던 2차전지 주식은 반토막 난 상태다. 유튜브 투자 고수들의 채널을 구독하고 주식 투자 책도 열심히 봤지만 수익률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원금만 회복하면 다시는 주식을 쳐다보지 않고 비트코인 투자에 나서리라 다짐한다.

미국 뉴저지에 사는 데이비드 밀러 씨(52)는 요즘 조기 은퇴할 생각에 설렌다. 25년간 적립한 주식형 퇴직연금 계좌 덕분에 월평균 8000달러(약 1100만원)씩 연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는 주당순이익(EPS) 등 기초적인 주식 용어도 모르지만, 연금 계좌를 S&P500과 나스닥 종목 위주로 장기간 굴린 덕분에 넉넉한 노후 자금을 손에 쥐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코스피 5000 시대’를 앞당기려면 투자 문화를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테마주 위주의 단기 투자보다 펀드와 연금 자산을 중심으로 한 장기 투자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자금 조달 활성화→주가 상승→국민의 노후 자산 증식’이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韓직장인, 주식계좌 보면 '한숨'…美은 은퇴가 기다려지는 이유

◇미 퇴직연금의 70%는 증시로

선진국들은 연금시장과 주식시장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국민연금 고갈이란 공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국가다. 퇴직연금에서 주식으로 흘러간 자금이 시장을 밀어 올리고, 개인은 시장 상승으로 불어난 연금을 통해 풍족한 노후를 보내는 식이다.

미국 직장인들은 연금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대표적 퇴직연금 제도인 ‘401k’의 전체 자산 가운데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71%에 달한다. 미국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매년 3조~4조달러 증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3000조원 안팎의 신규 자금이 미 증시로 유입되는 셈이다. 반면 한국 퇴직연금 자산에서 주식을 비롯한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17.4%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전년 대비 투자 금액이 53.3% 급증한 결과다.

새라 홀든 미국 자산운용협회(ICI) 투자 및 퇴직연금 리서치 담당 수석이사는 “미국에서 주식형 공모펀드를 보유 중인 가구의 3분의 2는 퇴직연금 제도를 통해 처음으로 투자를 접했다”며 “퇴직연금이 근로자들의 주식 투자 입문을 돕고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성장성 확보가 장기 투자 관건

한국 직장인 중 대부분은 주식에 투자할 여윳돈이 없다는 게 통계 결과다. 전체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묶인 탓이다.

국내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지난해 처음 400조원을 넘어섰다. 2019년 말 221조원에서 작년 말 432조원으로 5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불어났다. 10년 뒤엔 1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수익률은 초라하다. 적립금의 82.6%가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에 묶인 탓에 지난해 수익률은 연평균 4.77%에 그쳤다. 주식 비중을 미국 수준으로만 올려도 증시에 230조원이 추가 유입될 뿐만 아니라 수익률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평가다.

최현만 전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국민연금은 규모가 줄어드는 만큼 앞으로 국내 주식시장 지분을 줄여갈 수밖에 없다”며 “퇴직연금이 이를 대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월가에서 15년간 투자 전문가로 일한 영주닐슨 SKK GSB 교수는 “코스피지수 5000 시대의 과녁은 미국처럼 연금부자 늘리기가 돼야 한다”며 “직장인들을 증시로 끌어들이려면 한국 증시가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심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추가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일본은 지난해 ‘신(新)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도입했다. 비과세 기간을 평생으로 연장하고, 납입 한도를 연간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세 배 늘렸다.

서유석 회장은 “미국도 직접투자보다 펀드를 활용한 간접투자가 연금시장을 지탱하고 있다”며 “연금제도와 장기 투자 상품에 대한 과감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증권·운용사들 역시 투자자들이 믿고 장기 투자할 만한 공모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를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만수/뉴욕=나수지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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