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암 치료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 전자약으로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헬스케어 기업이 되겠습니다."
윤명근 필드큐어 대표는 최근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회사 비전을 이같이 밝혔다. 올해로 설립 8년차인 필드큐어는 전기장으로 암을 치료하는 전자약을 개발하는 의료기기 벤처다.
전기장은 뇌암, 폐암 등에서 효과가 입증되면서 새로운 항암요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관련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상용화 제품을 내놓은 곳은 미국 노보큐어 뿐이다. 노보큐어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은 필드큐어는 전기장 항암치료의 개화기를 여는 것은 물론 '꿈의 치료제'로 불리는 전자약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전기장 연구' 한우물 파다가 창업 도전
윤 대표는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물리학자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책임연구원,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을 지내면서 반도체와 나노입자 기술을 주로 연구했다.
그의 인생 항로가 바뀐 것은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에서 의학물리학자로 일하면서부터다. 엑스레이 암치료 연구를 시작하면서 헬스케어 산업과 인연을 맺었다. 엑스레이 암치료는 에너지를 이용해 암세포의 DNA를 손상시켜 암세포가 정상적으로 분열하지 못하고 죽게 만드는 치료법이다. 국립암센터에서 6년 동안 엑스레이 연구를 하다가 엑스레이처럼 에너지를 활용하는 전기장 치료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2012년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로 부임한 윤 대표는 본격적으로 전기장 연구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쓴 전기장 치료 관련 논문만 20여편에 이른다. 이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독보적이다. 노보큐어와도 활발하게 교류하며 연구 성과를 쌓았다.
오랜 연구는 그에게 창업의 문을 열어줬다. 노보큐어의 전기장 암치료기(TTFields) '옵튠' 보다 효율적이고 앞선 방식을 고안해냈다. 암치료에 혁신을 가져올 전기장 기술을 마련했다고 확신한 윤 대표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2017년 10월 '전기장(electric field)으로 병을 치료하는 회사'라는 뜻을 가진 필드큐어를 설립했다.
항암 효과 뛰어나고 부작용 없는 전기장
전기장이 암치료에 쓰이게 된 출발점은 물리학 이론인 '유전 영동(Gel Electrophoresis)' 현상이다. 비균일한 전기장 조건에서 전하를 띠지 않은 유전성 입자가 전기장 밀도가 높은 쪽으로 끌려가거나 밀려나는 현상이다. 입자가 스스로 전하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전기장의 영향으로 힘을 받아 이동할 수 있는 물리적 원리다.
이스라엘 의공학자인 요람 팔티 박사는 2000년대 초 전기장 관련 실험을 하다가 특정 주파수의 전기장이 세포분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포가 분열할 때 150~200킬로헤르츠(kHz) 범위의 전기장을 외부에서 가하면 세포 내에 불균일한 전기장이 유도되고, 이로 인해 세포 내부의 쌍극자 구조물에 유전영동에 의한 물리적 힘이 작용하게 된다. 이런 힘은 세포 구조를 변형시키고 기계적 스트레스를 유발해 결국 분열 중인 세포의 사멸을 촉진한다.
이런 현상은 전기장이 암 치료에 활용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빠르게 분열하고 증식하는 암세포의 특성 때문이다. 전기장이 이런 암세포의 분열과 증식을 억제한다면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치료수단이 될 수 있어서다. 팔티 박사는 2004년 노보큐어를 세우고 전기장 암치료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전기장이 암치료 수단으로 주목받은 것은 방사선 치료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는 점도 한몫했다. 방사선을 쬐면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까지 죽게 되지만 전기장은 정상세포에는 거의 피해를 주지 않는다. 성인의 정상세포는 분열과 증식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사선에 비해 부작용이 없다는 의미다. 윤 대표는 "전기장은 증식 속도가 빠른 암세포에 주로 영향을 주고, 정상세포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 같은 다른 항암요법에 비해 부작용이 매우 적다"고 했다.
뇌종양·폐암·췌장암 치료 대안으로 부상
세계 첫 전기장 암치료기인 노보큐어의 옵튠이 나온 것은 2011년이다. 원발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치료기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표준치료법인 테모졸로마이드(TMZ)를 병용하는 조건이다. TMZ와 옵튠을 병용하면 TMZ를 단독으로 쓸 때보다 전체생존기간(OS)이 4.9개월 늘어나는 것이 임상시험에서 입증됐다.
지난해 10월에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에도 쓸 수 있도록 FDA 허가를 받았다. 비소세포폐암의 경우 기존 화학요법과 옵튠을 병용했더니 OS가 3개월 늘어났다. 여기에 면역치료까지 병행하면 OS가 8개월까지 연장됐다. 옵튠은 췌장암에도 효과를 보였다. 지난해 말 공개한 임상 3상 결과에서 옵튠과 표준치료법(젬시타빈+파클리탁셀) 병행 시 표준치료법만 했을 때보다 12개월 시점 생존율이 13% 개선됐다.
옵튠은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 2000여곳의 의료기관에 보급됐다. 지난해 노보큐어 매출은 5억달러(약 7250억원)였다. 대부분이 교모세포종 치료에서 나왔다. 옵튠의 한달 치료비는 2만5000달러(3000만원) 안팎이다.
옵튠이 뇌종양에 이어 비소세포폐암, 췌장암 치료에도 쓰이게 되면 노보큐어의 매출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보큐어도 공격적인 성장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전기장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지금까지 누적 1만명인데 5년 뒤엔 35만명으로 늘고, 매출은 200억달러(30조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기장 암치료 시장이 급속하게 커질 것이라는 의미다.
필드큐어, 美 노보큐어 기술을 뛰어넘다
노보큐어가 전기장 암치료 시대를 개척했다면 필드큐어는 전기장 암치료의 대중화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보큐어 보다 환자 편의성과 효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기술을 개발하면서다.
필드큐어가 개발한 '아이필드(iField)'는 전기장을 암세포에 정밀하게 타깃할 수 있어 효능이 뛰어난데다 환자 상태에 따라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옵튠과는 차별화된 전기장 암치료기 기술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필드큐어는 전기장을 사람의 몸 속으로 보내는 전극 기술에서 진일보했다. 아이필드의 전극은 32개가 한 세트다. 복부와 등에 동시에 붙이면 최대 64개까지 한번에 쓸 수 있다. 옵튠 보다 전극 면적이 두 배 가까이 넓다. 윤 대표는 "전극의 면적을 늘리고 촘촘하게 만들어 전기장의 암세포 도달율을 한층 높였다"고 설명했다.
개별 전극을 따로따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옵튠은 모든 전극이 똑같이 작동한다. 이런 방식 때문에 옵튠은 사용 상 제약을 받는다. 가령 전기장으로 인해 환자 몸에 열이 높아져 화상 위험이 생길 경우 옵튠은 작동을 중지시키거나 전체 전기장 세기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반면 아이필드는 열이 나는 부위의 전극만 전기장 세기를 줄이면 된다. 효과적인 항암 치료를 중단 없이 계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필드큐어는 전기장을 여러 방향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쏘는 기술도 확보했다. 몸 속 세포는 방향이 제각각인데 방향에 따라서 전기장의 영향을 받는 정도에 달라진다. 이 때문에 전기장을 쏘는 방향이 다양할수록 효과가 좋다. 옵튠은 두 가지 방향으로만 전기장을 보낼 수 있다. 반면 아이필드는 16가지 방향으로 전기장을 동시에 쏠 수 있다.
몸 속 깊숙이 있는 심부종양 치료에도 아이필드가 효과적이다. 옵튠의 경우 심부종양에 효과를 내려고 전압을 높이면 피부화상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아이필드는 환자의 피부 및 심부온도를 모니터링하면서 부작용 없이 충분한 세기의 전기장을 심부종양에 전달할 수 있다.
치료기 사용시간이 짧은 것도 아이필드의 장점이다. 옵튠의 경우 환자는 하루 18~24시간 동안 전극을 몸에 붙이고 치료 받아야 한다. 반면 아이필드는 하루 2~4시간이면 충분하다. 최고 전류가 4000밀리암페어(mA)로 경쟁사의 2배가 넘으면서도 부작용이 없는 고전기장 인가 기술 덕분이다. 윤 대표는 "아이필드가 옵튠보다 사용시간은 크게 짧으면서 효과는 더 뛰어나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했다.
'깜깜이' 전기장 치료 한계 극복
방사선 치료는 한번에 쬐는 방사선 양과 시행 주기를 미리 정해놓고 이뤄진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의사가 처방한대로 이뤄져야 치료 효과를 높이면서 부작용도 줄일 수 있어서다. 반면 현재의 전기장 치료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임의대로 이뤄지고 있다. 환자 몸에 전기장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확인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다.
필드큐어는 전기장 치료계획시스템(TPS)을 개발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몸 안의 전기장 분포를 계산하고 분석해주는 솔루션이다. 필드큐어가 특허를 보유한 기술이다. TPS는 기존 방사선 치료처럼 종양의 상태, 크기 등에 따라 전기장의 강도, 노출 시간, 시행 횟수 등을 도출해준다. 윤 대표는 "의료진에게 최적의 치료계획을 알려줘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라며 "치료 도중에도 수시로 치료 계획을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필드큐어는 전극마다 전기장 세기 등의 조건을 입력할 수 있고, 종양에 전기장이 어느정도 들어갔는지를 의료진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솔루션 '온코필드(OncoField)'도 개발했다. 윤 대표는 "전극을 붙이는 부위별로 치료 효과를 평가해서 이를 반영한 적응형 치료법을 제공한다"고 했다.
"뼈전이암·간암 치료에 도전"
필드큐어는 올해 아이필드의 임상시험에 나선다. 허가 절차에 필요한 임상 3상 시험에 앞서 연구자 주도 임상으로 우선 항암 효능을 입증할 계획이다. 적응증은 뼈전이암과 간암이다. 표준치료법과 병용으로 이뤄진다.
윤 대표는 "국내 대학병원 두세곳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을 추진하고 있다"며 "효과가 입증되면 임상 3상 시험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전기장 치료기는 열을 내기 때문에 암환자의 통증을 완화해주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필드큐어는 전기장 암 치료가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가 어려운 암환자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말기암 환자의 생명 연장에 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활용 범위를 크게 늘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윤 대표는 "부작용 우려 때문에 환자에게 지속적으로 쓰기 어려운 방사선 치료를 어느정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필드큐어는 전기장 치료기 관련 특허만 40여개를 보유 중이다. 원천특허도 2개가 넘는다. 직원 17명의 대부분이 연구개발 인력이다. 2027년 24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기업공개(IPO)하는 게 목표다. 윤 대표는 "전기장 치료기는 전자약 중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라며 "암 치료 시장의 혁신을 주도하는 글로벌 헬스케어 리더가 되겠다"고 했다.
박영태 바이오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