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뮤지컬 판도 바꾸는 AI 자막 안경…외국인도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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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대, 음악이여.”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뮤지컬 ‘베토벤’의 노래가 시작되자 눈앞에 가사가 떠올랐다. ‘인공지능(AI) 자막 안경’을 쓴 덕분이다. 자막은 배우의 얼굴을 가리지 않아 베토벤을 연기하는 배우이자 가수인 박효신의 표정과 몸짓을 보며 가사도 함께 읽기 편했다. 노랫말의 뜻을 바로 알 수 있어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기도 쉬웠다. 쉬는 시간, 객석과 로비 곳곳에선 AI 자막 안경을 손에 든 외국인 관객들이 꽤나 눈에 띄었다.

국내 뮤지컬계가 AI 자막 안경을 활용해 외국인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안경은 배우가 말하거나 노래하는 내용을 AI가 인식한 뒤 미리 준비한 자막을 적절한 순간에 렌즈에 띄우는 방식이다. 원래 뮤지컬은 2000년대엔 주로 무대 옆 스크린, 2010년대에 들어선 태블릿PC로 자막을 봐야 했다. 하지만 AI 자막 안경은 무대와 자막이 한 시야에 들어와 공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배우의 연기와 노래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원래 AI 자막 안경은 청각장애인의 공연 관람을 돕기 위해 개발됐다. 하지만 최근엔 외국인 관광객의 이용 빈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안경과 함께 받은 기기를 조작하면 한국어는 물론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도 편하게 선택해 자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여도 비교적 간편한 데다, 약 1만5000원만 내면 빌릴 수 있을 저렴한 점도 장점이다. 외국인 관람객이 많은 세종문화회관과 샤롯데씨어터, 블루스퀘어 같은 대형 뮤지컬 공연장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블루스퀘어를 운영하는 놀씨어터의 신수경 공연장운영팀장은 “외국인 팬덤이 강한 스타가 출연하는 작품이 특히 대여가 많다”며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요도 있다”고 했다.

지난달 9일 개막한 뮤지컬 ‘베토벤’의 언어별 안경 대여 비율을 보면, 외국어 자막을 고른 관객은 전체 대여자의 77.3%로 한국어 자막을 선택한 관객 22.7%의 3배가 넘는다. 외국어 중엔 일본어가 31.6%로 가장 높았다. 영어(25.7%)와 중국어(20.0%)가 뒤를 이었다. AI 자막 안경 ‘아울’을 개발한 엑스퍼트아이앤씨의 김병준 총괄은 “일본과 중국, 대만 등 아시아권 관광객뿐 아니라 영어권 관광객도 안경을 찾고 있다”며 “서울을 찾은 외국인이 저녁에 즐길 거리로 공연을 고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AI 자막 안경이 K뮤지컬의 해외 수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6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 6관왕에 오른 뒤로 해외에선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는 추세. 자막 안경을 활용하면 해외에 작품을 선보일 때 한국 배우가 한국어로 공연하더라도 외국인 관객에게 대사와 노랫말의 뜻을 편하게 전달할 수 있다.물론 아직 아쉬운 대목도 있다. 실제로 써보니 자막이 실제 대사보다 조금 빠르거나 늦게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소 불편한 착용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샤롯데씨어터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의 이수정 책임은 “아직 초창기지만 한국 뮤지컬의 언어 장벽을 낮추는데 AI 자막 안경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며 “정확도가 높아지고 안경도 가벼워진다면 쓰임새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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