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나우
KB금융그룹이 국내 최초로 글로벌 인적자본 공시 표준인 ISO 30414 인증을 받은 지 6개월이 지났다. 단순한 공시 도구로서가 아닌, 그룹 차원의 인재 전략을 관통하는 ‘경영 언어’로 인적자본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해 ‘인적자본 관리 체계’를 수립하고 이를 계열사 전반의 HR 전략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연계 지표로 활용해왔다. 이 체계의 핵심은 ‘HR관리지표’로 현재와 미래를 정량적 데이터로 측정하며, 인재 전략이 기업가치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효성 KB금융 HR담당 상무(CHO)는 〈한경ESG〉와의 인터뷰에서 “ISO 30414 인증은 KB의 데이터 기반 HR 의사결정 여정에 글로벌 공신력을 부여해주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ISO 30414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2018년 제정한 인적자본 공개 지침이다. 비용, 다양성, 리더십, 조직문화, 생산성 등 11개 영역, 총 58개 지표로 구성된다. 도이치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BoA), SAP 등 글로벌 선도기업들이 이 지표를 경영관리에 활용하며, KB금융은 지난해 10월 최종 심사를 거쳐 11월 5일 인증을 공식 취득했다.
전 상무는 “HR의 일하는 방식을 기존 제도 개선 중심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우리가 잘하는 점과 부족한 점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바꾸는 과정”이라며 “이러한 변화가 기업가치 제고로 연결된다는 확신을 갖고 ISO 30414 인증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적자본, HR 전략에 통합
KB금융은 2019년부터 ‘HR 딥 체인지’라는 정기적 HR 전략 리뷰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각 계열사의 CEO와 CHO(최고인사책임자)가 참여해 HR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현재 ISO 30414 지표를 기반으로 설계한 ‘HR관리지표’를 논의에 활용하고 있다. 전 상무는 “이 지표는 HR의 미래 방향성과 인재전략을 결정하는 척도로 기능한다”고 밝혔다.
ISO 30414는 인재 관리와 다양성 측면에서도 실질적 지침 역할을 하고 있다. KB금융은 DEI 2027 목표를 수립해 채용·성별·역량의 다양성을 중장기 과제로 설정했다. 내부 HR관리지표에는 ISO 프레임보다 더욱 구체화된 데이터가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성별 다양성을 위해 ‘전체 직무별 여성 비율’을 관리하며, 특정 직무에 성별 쏠림이 나타나지 않도록 균형을 조율한다. 여성 리더십 비율도 팀장, 부점장, 본부장, 임원 등 직급별로 세분화해 측정 및 모니터링하고 있다. 전 상무는 “단순 비율이 아니라 각 계층에서 실질적 기회의 균형이 이뤄지도록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KB금융은 ESG 위원회의 중장기 과제로 ‘KB DIVERSITY 2027’을 수립하고, 관련 지표를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채용, 성별, 역량 다양성 같은 항목이 ESG 위원회 차원에서 모니터링되고 있다는 뜻이다. 전 상무는 “인적자본 데이터는 단순 HR의 영역을 넘어 그룹의 ESG 전략 의사결정에 반영된다”고 강조했다.
KB금융의 인재전략은 ‘사람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전 상무는 “직원을 ‘인적자원’이 아닌 ‘인적자본’으로 정의하고, 지속적 투자와 질적 상향이 필요한 대상임을 전 계열사에 공유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인사 제도, 연수 기획, 조직문화 등 전반적 제도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KB금융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응한 인적자본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 기술교육을 넘어 인간 고유의 감성 역량을 병행 강화하는 방식이다.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하고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AI 리터러시’ 역량을 높이는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상담 등 ‘휴먼터치(Soft Skill, 인간 중심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인적자본, 기업가치 높이는 핵심 전략”
AI 기술의 도입이 직원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현실을 고려해 ‘AI와 함께 일하며 시너지를 낸다’는 인식의 전환도 병행하고 있다. 전 상무는 “기술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조직문화를 통해 HR이 기업가치 창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ESG 흐름이 주춤하고, 미국 등지에서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축소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KB금융은 이런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다. 전 상무는 “인적자본 전략은 ESG 트렌드 이전부터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핵심 전략이었다”며 “KB는 단지 트렌드를 좇는 것이 아니라 인적자본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기업의 근원적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취임 당시 “고객·사회·직원과 함께 성장하는 가치가 결국 주주가치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전 상무는 이 철학이 그룹 전반에 반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 상무는 “핵심 인재가 유출되면 기업가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시대”라며 “우리는 인적자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외부 인증과 ESG 공시를 통해 더욱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인적자본을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전 상무는 “아직 국내에서는 많이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이번 인증을 계기로 HR이 외부 이해관계자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는 기능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ISO 30414는 HR이 기업 내부의 살림살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ESG 경영과 기업가치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KB금융은 앞으로도 인적자본 데이터 체계화와 지표 향상을 통해 이 역할을 계속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