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영남권 산불이 진화된지 한달여가 지났다. 이번 화재로 3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주택 4000여동이 소실됐다. 산림 피해 면적은 9만㏊에 달한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난달 초순부터 산불방지대책본부를 24시간 가동했지만, 2주 후 경북 의성에서 성묘객 실화로 발생한 산불은 사흘 뒤 43㎞ 떨어진 주왕산 국립공원까지 번졌다. 공원 내 산림 3260㏊가 불에 타고, 탐방로 2개 구간 5.174㎞가 손실됐다. 국립공원 또한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를 입었다.
주왕산 산불은 고지대에서 빠르게 확산하며 소화차량이 도달하지 못했고, 가파른 경사에 인력투입도 불가능해 초기 진화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30년된 노후 헬기 1대로는 주왕산뿐 아니라 지리산 등 전국 국립공원에서 동시다발한 산불 진화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공단은 행정 직원까지 30~40명을 총 동원해 20리터짜리 물통을 메고 산을 오르내리며 잔불을 정리했지만, 고지대에서 확산하는 주불은 헬기 투입을 기다리며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18일 신속한 산불 피해복구를 위해 '필수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재해대책비를 1120억원 증액했다. 산불 진화 노후 헬기도 적기 교체키로 했다. 그러나 신형 헬기 투입까지 약 3년을 기다리며, 노후 헬기 1대에 의존해야 한다. 인재(人災)를 막는다고 해도 기후변화로 더 빈번하고 강력해지는 산불 추세를 고려하면 더 전면적이고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
산림청은 산불 대응 핵심 인프라로 임도(林道)를 꼽고 이번 추경에 임도 450㎞ 확충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국립공원 고지대는 소화차량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장은 웨어러블 로봇을 개량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헬기를 보완할 인공지능(AI) 기반 산불 진화용 드론도 필요하다. 능선 위 주불 진화에 역량을 집중해야 산불을 잡을 골든타임을 사수할 수 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