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은 빚을 내서 미래의 나랏돈을 당겨쓰는 겁니다. 미래 세대를 생각해 아껴 쓰고 의미 있게 써야 합니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잇따르는 ‘추가경정예산안 증액론’에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이렇게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재해·재난 대응(3조2000억원), 통상 및 인공지능 지원(4조4000억원), 민생 안정(4조3000억원) 등 총 12조2000억원 규모의 필수추경안을 확정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지역화폐 지원 사업 등을 반영해야 한다”며 15조원으로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 일각에선 “규모를 30조~50조원으로 늘려야 한다” “대선 후 2차 추경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대규모 증액에 거리를 두는 여당에서도 세부 사업을 검토한 뒤 필요하면 증액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충격과 재난·재해 등으로 빠른 속도로 식고 있는 현재 내수 상황을 고려할 때 대다수 전문가도 추경 편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잇따르는 ‘다다익선(多多益善)’식 추경론에 경계하는 시각도 많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잠재성장률 수준만큼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경기부양 정책을 펼 경우 엄청난 부작용을 겪게 된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할 정도다.
추경은 사실상 미래 세대의 예산을 당겨쓰는 일이다. 정부에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 추경을 편성하려면 적자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한다.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시장 금리가 올라가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 국가 채무가 적정 규모 이상으로 불어나면 국가 신용등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쓸 곳은 많고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도 따져야 한다. 정부와 한은은 12조2000억원 규모 추경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이 2020년 발간한 ‘거시계량모형(BOK20) 구축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산출한 결과다. 하지만 보고서 서문은 분석 과정에서 “경제주체의 ‘합리적 기대’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 재정 확대로 세금 또는 물가가 오를 것을 예상한 국민이 씀씀이를 줄이는 등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경기 부양 효과가 계량 모형 결과보다 더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지역화폐 사업과 같은 현금성 지원 사업을 추경으로 추진하는 것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서 정부 예산을 추가로 집행한다면 철저하게 가성비를 따져야 한다. 내실을 갖춘 추경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