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AI 시대에 마주한 사진 작가들의 정물 구본창 사진 기획전 《진동하는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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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I 시대에 마주한 사진 작가들의 정물 구본창 사진 기획전 《진동하는 사물들》

정지된 듯 고요하지만 저마다의 내밀한 울림으로 진동하고 있는 사진들. 구본창, 박찬우, 조선희 등 한국 사진계를 이끌어온 동시대 한국 사진작가 9인의 정물 사진을 한자리에 모은 《진동하는 사물들(Objects in Oscillation)》이 오는 7월 19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시대를 풍미했던 사진작가들은 AI시대에 어떤 마음으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을까.

유리컵 안에 담긴 지 오래된 붉은 컬러의 액체, 자연광 아래 빛 바랜 상자들, 크게 확대해 찍은 너트 사진.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은 과도한 디지털 후보정이나 AI 기반의 이미지 생성 및 교정을 거치지 않았다. 오로지 작가 자신의 눈과 감각, 그리고 카메라의 광학적 기술이라는 오래된 아날로그 작업으로 만들어진 사진이 오히려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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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K1 구본창 사진 기획전 《진동하는 사물들》 설치전경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진동하는 사물들》은 전설적 사진작가이자 기획자, 그리고 교육자로서 사진이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구본창 작가가 동료 사진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기획한 전시다. 구본창 작가 역시 자신의 정물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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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b. 1953) 〈컬렉션 18〉 2019 Archival pigment print 124 x 93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새틴 천 안감의 빈 상자들을 모아 기존의 내용물이 빠져나간 자리를 음각으로 촬영한 K1 뒤쪽 전시장의 ‘오브제’와, 우연히 마주한 사물들을 단순한 배경과 조명 아래에서 촬영한 ‘컬렉션’ 연작은 간과되는 존재를 따라가는 구본창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과한 배경과 조명이 없는 상태에서 각각의 사물은 오히려 스스로 고유한 이야기를 드러낸다.

구본창 작가의 연작이 전시된 공간에 정희승 작가의 사진이 같이 놓여 있다. 그는 새로운 연작 ‘병렬투영’(2026)에서 19세기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의 시집 『주사위 던지기』(1897)를 사진으로 재해석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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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승(b. 1974) 〈생각 (병렬투영)〉 2026 Archival pigment print 67.5 x 90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해석이라고는 하지만, ‘사진이 문학을 설명한다’거나 ‘문학이 사진을 보충한다’는 개념은 없다. 그는 원본 텍스트의 개념과 사진 이미지가 어느 한 소실점에서도 만나지 않고 평행하게 나아가는 병렬의 관계에 놓기 위해, 소실점을 발생시키지 않는 투시도법인 *‘병렬 투영(parallel projection)’의 구도를 사용했다.

*병렬 투영(parallel projection): 3차원의 대상을 2차원 평면에 표현할 때, 시선(투영선)을 한 점으로 모으지 않고 평행하게 연장하여 그리는 투시 기법으로,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물이 멀리 있어도 작아지지 않고 동일한 크기와 비례를 유지한다.

콘크리트 조각, 철근, 전선, 기계 부품, 식물의 잔해 등을 재조합한 조성연 작가의 ‘사라지지 않고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는 작가가 도시의 주변부에서 채집한 재료들로 구성돼 있다. 작품들은 계산된 연출의 결과라기보다 작가가 사물과 함께한 시간과 인연이 빚어낸 산물에 가깝다. 그 일시적인 균형 속에서, 사물들은 숨겨졌던 새로운 가능성과 생명력을 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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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강(b. 1970) 〈Chemical Bottle 3〉 1997 Gum bichromate print 19.5 x 14.5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김수강 작가는 돌, 병, 종이가방 등 주변에 무심히 존재하는, 일상의 모퉁이에 놓인 사물들에 시선을 돌린다. 물건들을 명상하듯 오래 들여다보며 그 안에 깃든 아우라를 담아내는 작가는 그 물건에 회화적인 물성을 입힌다. 그의 사진이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이유다. 종이에 물감을 넣은 용액을 바르고 빛을 쬐어 물 속에서 현상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 색조를 구현하는 ‘검프린트(gum print)’ 기법으로 사물에 질감을 부여한다. K2 1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김수강이 고전적인 유제 기법으로 사진 매체의 가능성을 다룬다면, 김경태 작가는 사진을 중첩하고 합성하며 렌즈 초점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미지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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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b. 1983) 〈Brass Hex Nut M11.IMG〉 2016 Archival pigment print 225 x 180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작가는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한 후, 각 사진에서 초점이 가장 선명하게 맞는 부분들만 합성하는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 기법을 사용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화면의 모든 지점에 고르게 초점이 맞는 선명한 이미지가 탄생한다.

이렇게 완성된 연작 ‘Brass Hex Nut’(2016)는 너트 표면의 질감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전시장에서는 세 점을 나란히 배치하여 시선과 초점이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물 그 자체보다 경험의 흔적에 집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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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우(b. 1963) 〈23111ws〉 2023 Archival pigment print 150 x 124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박찬우 작가 역시 중첩의 기법을 활용하지만, 그의 목적은 경험이 축적되며 남는 ‘기억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함에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조선시대 ‘책거리’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책거리가 당대의 지식과 취향, 가치관을 진열하기 위해 가장 ‘좋은’ 물건들을 그려 넣은 회화의 한 장르였다면, 박찬우는 ‘좋음’의 기준을 책 자체의 특성이 아닌 경험의 축적에 둔다.

책장에 사용 흔적이 묻은 일상 용품들을 병치, 다시점(多視點) 방식으로 중첩 촬영한다. 그의 작업은 경험과 기억이 덧대어지며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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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연(b. 1970) 〈설탕_07〉 2015 Light jet c-print 225 x 150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달콤하고 반짝이지만 이내 사라질 운명을 지닌 설탕 오브제. 구성연 작가의 ‘설탕’ 연작은 설탕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보물과 장식을 정물화 구도로 배치해 촬영한 작품이다. 사진은 이 모사물을 마치 실제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 간극을 드러낸다. 작가는 실제와 가상, 영원과 순간, 이상과 허상의 경계에서 인간의 욕망을 조명한다.

노끈에 묶여 공중에 떠 있는 흑백사진 속 한 남자의 모습. K2의 2층에서는 ‘사라짐’에 대한 성찰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된다. 정정호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노무자였던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고 사진으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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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호(b. 1981) 〈Mirror〉 2018 Archival pigment print 138 x 110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작업 중 조사 과정에서 부족한 자료와 접근이 제한된 장소들에 맞닥뜨린 작가는 사라진 역사를 외부의 정보로 메우기보다 현재 자신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탄피, 철사, 끈, 아카이브 문서, 아버지의 군대 사진 등을 재구성해 촬영함으로써 전쟁 속 잊힌 개인의 작은 역사를 복원한다. 조사, 수집, 조합을 거치는 긴 작업 과정은 지워진 모든 존재의 증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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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b. 1971) 〈Black Imago 170823〉 2025 Archival pigment print 100 x 75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조선희 작가의 사진은 부재와 소멸을 탐구한다. ‘Black Imago’(2024~2025) 연작은 시들어가는 꽃의 외피에 화장의 재를 연상시키는 검은 안료를 입혀 촬영한 작업이다. 검게 뒤덮인 꽃은 생명력과 기능이 휘발된 모습으로 사진은 이 마지막 모습을 물질적 기록으로 붙든다.

작가는 생의 기능을 다한 이후에도 지속되는 물질의 상태를 조명하며,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미학적 상태로 전이되는 순간으로 기록한다.

구본창 작가가 기획한《진동하는 사물들》은 오는 7월 19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 박찬은 기자 사진 국제갤러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37호(26.07.0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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