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같은 AI’ 노리는 애플

최근 3년간 월가를 지배한 인공지능(AI) 투자 공식은 명확했다. 더 큰 AI 모델을 만들려면 더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했고, 엔비디아는 그 GPU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며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했다. 반면 애플의 지난 2년은 굴욕의 연속이었다. 2024년 6월 엔비디아에 처음 선두를 내준 뒤 두 회사는 1위 자리를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그러나 2025년 4월을 끝으로 애플은 왕좌에서 멀어졌고, 올 1월에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에 추월당해 3위로 밀려났다. 자체 AI 모델 ‘제미나이’를 앞세운 알파벳이 지난해 65% 넘게 급등하는 동안 애플의 주가 상승률은 9%에 그쳤다. 차세대 ‘시리(Siri)’의 출시는 계속 미뤄졌고, 월가에서 “애플은 AI 시대에 한물간 기업”이라는 냉소가 흘러나왔다.

디지털 통행세 기업으로 변화
애플이 보유한 활성기기는 약 25억 대로 추정된다. 애플은 막대한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서비스와 AI 기능을 배포할 수 있는 거대한 판매 창구다. 엔비디아가 GPU를 판매하려면 대규모 데이터센터 고객을 찾아야 하지만, 애플은 운영체제 업데이트만으로 수억 명에게 새 기능을 선보일 수 있다.
가장 뛰어난 AI보다 가장 가까운 AI
애플은 생성형 AI 경쟁의 초기 단계에서 분명히 뒤처졌다. 그러나 반드시 세계에서 가장 큰 AI 모델을 직접 개발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가 어느 회사의 AI를 이용하더라도 그것이 아이폰과 맥, 아이패드 안에서 작동한다면 고객과의 접점을 통제하는 기업은 애플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간단하고 개인적인 작업은 기기 내부에서 처리하고, 복잡한 연산은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한 클라우드에서 수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자체 기술이 부족한 영역에서는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외부 업체의 AI 모델을 연결할 수도 있다. 모든 AI를 직접 만드는 대신 어떤 작업을 어느 모델에 맡길지 결정하는 지휘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애플은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기존 기기와 소비자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도 통신망을 직접 만들지 않았다. 대신 통신망 위에서 작동하는 가장 매력적인 기기와 운영체제를 장악했다.애플이 가진 가장 강력한 AI 자산은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사용자와의 관계다. 아이폰에는 연락처와 일정, 사진, 메시지, 이메일, 결제 정보가 담겨 있다. 개인정보 보호는 양날의 검이지만, 애플은 가능한 한 작업을 기기 내부에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AI 모델의 성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비슷해진다면, 소비자는 가장 똑똑한 AI보다 자신의 정보를 가장 안전하게 다루는 AI를 선택할 수도 있다.
최근 애플 주가 상승의 주요 배경 중 하나는 중국 시장이다. 중국은 애플의 핵심 생산기지이자 주요 소비시장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외국산 AI 모델의 사용을 제한하면서 현지 아이폰에는 애플의 핵심 AI 기능을 탑재하기 어려웠다. 최근 중국은 애플의 AI 서비스 제공을 가로막던 규제 장벽을 낮췄다. 이달 15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애플의 AI 서비스를 승인 목록에 올렸다. 애플은 알리바바와 바이두 등 현지 기업의 AI 모델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직접 모든 AI를 개발하지 않고도 현지 협력사의 기술을 자사 기기에 넣어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왕좌 앞의 위험들, 그리고 가능성

높아진 몸값도 부담이다. 현재 주가에는 AI 성장과 아이폰 교체 수요, 중국 시장 회복, 서비스 매출 확대에 대한 기대가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시장 눈높이를 계속 뛰어넘어야 지금의 기업 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 또 각국 정부는 앱 유통과 결제를 지나치게 통제한다고 애플을 비판해 왔다. 애플이 AI 시대의 새 관문까지 장악하면 규제 당국의 감시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애플은 최초의 PC 회사도, 음악 플레이어 회사도, 스마트폰 회사도 아니었다. 대신 복잡한 기술을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싶어 하는 제품으로 바꿨다. AI에서도 같은 마법을 재현할 수 있을까. 왕좌를 되찾은 애플 앞에 놓인 질문은 ‘가장 뛰어난 AI를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다. ‘AI도 아이폰처럼 만들 수 있는가’다. 월가는 그 가능성에 다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매기고 있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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